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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수필가 전숙희 선생의 발자취

2016.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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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희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숙희 문학상 시상식과 평전 출판 기념회가 열렸습니다. 문학을 삶의 가치로 삼았던 전숙희 선생의 정신은 앞으로도 ‘전숙희 문학상’과 추모사업으로 이어지면서 한국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기틀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100주년 기념 행사 현장과 함께 전숙희 선생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그립다 말을 하니 그리워! 추모의 밤과 전숙희문학상ㆍ평전 출판기념회



한국을 대표하는 수필가이자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힘쓴 벽강 전숙희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9월 9일 ‘문학의 집 서울’에서 ‘그립습니다 전숙희 수필가’ 추모의 밤을, 10월 6일에는 한국현대문학관에서 제6회 전숙희문학상 시상식과 평전 『벽강 전숙희』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추모의 밤_막내여동생 전성결 선생의 회고담


추모의 밤 행사에는 전숙희 선생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과 문인들이 자리했는데요. ‘여성의 삶과 사회적 삶, 그 사이의 미학’이라는 주제 아래, 문학평론가 서정자 교수의 강연으로 추모식의 문이 열었습니다. 이어진 김남조 시인과 이태동 평론가의 회고담, 후배 수필가인 유혜자•권남희 선생의 소설•수필 낭독이 초가을의 감성을 북돋았습니다. 언니 전숙희를 추억하는 막내 여동생 전성결 여사의 회고담과 자부 윤경희•손녀 강유경 성악가의 아름다운 노래는 전숙희 선생에 대한 그리움을 한층 더했습니다.



전숙희 선생의 문학세계를 기리고 의미 있는 작품을 발굴하여 수필문학의 영토를 넓히고자 2011년 제정된 ‘전숙희 문학상’이 6회를 맞았습니다. 이번 수상작은 허수경 시인의 수필집 『너 없이 걸었다』로, 독일 시인들의 시를 구심적으로 하여 ‘너’ 곧 모국어 없이 살았던 세월들에 대한 아픔과 기억이 담겨 있는 수작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허수경 시인은 “2001년 동서문학상을 수상할 때 전숙희 선생을 처음 뵈었습니다. 꼼꼼히 제 시들을 읽어 주셔서 참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상이 선생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격려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열정을 갖고 묵묵히 제 길을 가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전숙희 선생의 작품집


이번 시상식에는 평전 『벽강璧江 전숙희』의 출판기념회가 함께 열렸습니다. 축사를 맡은 이어령 평론가는 전숙희 선생을 일컬어 기독교 정신인 베풂과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던 한국문단의 어머니라 칭했는데요. 평전을 집필한 조은 시인은 ‘컸으나 섬세했고, 대찼으나 가냘팠고, 차갑고도 뜨거웠던 사람’으로 전숙희 선생이 이룩한 위대한 업적과 인간적인 면모를 표현했습니다. 이경희 시인의 축시와 김주연 평론가의 문학 강연은 전숙희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의 면면들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전숙희 추모위원회 위원장 김남조 시인을 비롯해 김후란•신달자•유안진 시인, 김병익 평론가 등 문학인들은 물론 전필립 회장, 김성진 고문, 박병룡 사장, 이창민 감사 등 임원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벽강 전숙희 선생은



1916년 강원도 통천군에서 태어나 201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1939년 당시 이화여전 교수였던 소설가 이태준의 지도로 단편소설을 <여성> <사상계>에 발표하며 등단했는데요. 섬세하고 다정다감한 여성의 심리를 군더더기 없는 조촐한 필치로 그려내는 것이 그의 수필의 특징인데, 1954년 첫 수필집 『탕자의 변』을 출간한 이래, 『이국의 정서』(1957), 『삶은 즐거워라』(1972), 『나직한 말소리로』(1973), 『영혼의 뜨락에 내리는 비』(1980), 『가진 것은 없어도』(1982), 『가족과 문우들 속에서 나의 삶은 따뜻했네』(2007) 등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국내외를 넘나들던 문화교류의 선구자


| 평전 『벽강璧江 전숙희』 (한겨레출판 간행)


문예지 『동서문학』 발간과 국제펜클럽 활동을 통해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일에 앞장 섰으며 스무권에 달하는 수필집을 펴낼 만큼 뜨거운 창작열을 보여준 ‘벽강 전숙희 선생’은 시대를 이끈 신여성이자 문인으로써 폭넓은 사회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그의 업적에 비해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벽강의 삶을 탄생 100주년을 맞아 평전으로 엮어 보았는데요. 집필을 맡았던 조은 시인은 전숙희 선생을 회고하며 “컸으나 섬세했고, 대찼으나 가냘팠고, 차갑고도 뜨거운 사람”이라 정의 내리기도 했습니다.


동서문화 창간호(좌), 동서문학 창간호(우)


전숙희 선생(1916~2010)은 1970년 10월 해외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유학생과 동포들에게 조국의 따뜻한 소식으로 위로를 전하는 한편, ‘동서양 문화교류’라는 광범위한 의미를 담은 문예지 『동서문화』를 창간했습니다. 이는 1985년 11월, 『동서문학』이란 이름으로 개편되었습니다. 문학을 향한 전숙희 선생의 지치지 않는 열정은 파라다이스 그룹의 지원으로 30여 년간 지속되었는데요. 『동서문화』 사무실에서 그녀는 ‘계원예술고등학교’ 설립을 추진했으며, 1980년 개교하게 되었습니다. 계원예고가 지금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계원예술대학이 세워지면서 그룹의 육영사업은 한 단계 도약하였습니다. 전숙희 선생은 1983년부터 1991년까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의 회장직을 맡아, ‘88 서울 국제펜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이에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펜 런던본부 종신 부회장에 선출되기도 했습니다.


한국현대문학관


문예지 『동서문학』을 30년 가까이 발간하며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1997년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문학관인 ‘동서문학관’(현 ‘한국현대문학관’)을 개관하는 등 국내외 문학 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는 문학과 문화 활동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8월,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내가 문학을 사랑하며 문학을 위해 일하며 문학인들 속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지상을 떠나간 후에도 내 명부는 문학이라는 울타리 속에 남으리라는 것. 이것만은 후회 없는 나의 긍지요, 희망이다.

- 전숙희, 「문학은 나에게 무엇인가」에서





본 포스팅은 파라다이스 그룹 사내보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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