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가을, 무엇을 마실지 고민된다면

가을은 참 애매한 계절입니다. 트렌치코트를 꺼내 입기에는 낮의 햇살이 아직 따뜻하고, 그렇다고 다시 넣어두기에는 아쉬워서 조금 더 서둘러 입게 되죠. 테라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괜찮을 것 같다가도 해가 기울면 금세 쌀쌀해지고, ‘조금만 더 있다가’ 하는 사이 어느새 겨울을 앞두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짧게 머무는 계절일수록 그날 날씨를 더 아껴 즐기게 됩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테라스에 앉아 식사하고,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와인 한 잔을 마시는 일도 그렇죠. 어쩌면 가을의 와인이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계절의 감각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가을의 테라스에 어떤 와인을 놓으면 좋을까요?
비노파라다이스 한남은 이번 큐레이션에서 ‘지아코모 페노키오 바롤로(Giacomo Fenocchio Barolo)’를 골랐습니다. 깊이 있는 풍미를 천천히 따라가기 좋은 바롤로에 트러플 파스타와 채끝 스테이크를 곁들이고, 선선한 바람이 머무는 테라스에서 한 잔의 시간을 즐겨봤습니다.

짧은 가을을 즐기는 가장 느린 방법
지아코모 페노키오 바롤로 (Giacomo Fenocchio Barolo)




가을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면, 우선 테라스에 앉아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낮의 온기가 조금 남아 있고, 해가 기울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간. 비노파라다이스 한남의 테라스는 하루 사이 달라지는 가을 온도를 와인과 함께 조금 더 가까이 느끼기 좋은 곳입니다.
이런 날에는 한 모금에 인상을 남기는 와인보다, 대화와 함께 곁에 오래 두고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잘 어울립니다. 처음에는 선명했던 향이 공기와 만나 한층 부드러워지고, 음식과 함께 풍미를 살펴볼 수 있는 그런 와인 말이죠.
비노파라다이스가 가을의 한 잔으로 ‘지아코모 페노키오 바롤로’를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잔을 채우는 딥 루비 컬러 위로 검은 자두와 말린 장미, 감초와 쌉쌀한 스파이스의 향이 차례로 피어납니다. 처음부터 모든 풍미를 보여주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조금씩 새로운 표정을 드러내는 매력적인 와인입니다.


테이블 위 함께 페어링하기 좋은 디쉬는 단연 트러플 파스타입니다. 소스의 짙고 고소한 트러플 아로마가 ‘지아코모 페노키오 바롤로’와 만나 와인의 부드러운 타닌감을 감싸안으며 계절이 지닌 묵직한 풍미를 입안에 직관적으로 남깁니다. 차가워지는 공기 속에서 음식과 와인을 번갈아 마주하며 한 박자 서두르지 않고 즐기기 좋은 조합이 되어주죠.
오래된 와이너리가 서두르지 않는 이유
160년의 시간이 만든 바롤로

지아코모 페노키오는 1864년 이탈리아 몬포르테 달바에서 시작된 전통 있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입니다. 현재 5대손인 클라우디오 페노키오가 가업을 이어가며, 부시아를 중심으로 칸누비, 빌레로, 카스텔레로 등 바롤로를 대표하는 크뤼 포도밭을 가꾸고 있죠. 1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가족이 같은 땅을 지키며 와인을 만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와이너리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의 시간을 쌓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의 의미를 보여주는 순간도 있습니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참석한 노벨상 공식 만찬에 지아코모 페노키오 바롤로가 와인으로 올랐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열린 그날의 만찬에서 한강 작가를 비롯한 노벨상 수상자들과 주요 인사들이 함께한 자리에 이 와인이 놓였죠. 160년의 전통을 이어온 와이너리의 한 병이 세계적인 만찬의 테이블에 오르기까지 ㅡ 그 안에 쌓인 시간과 생산자의 철학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하는 대목입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이들이 놓지 않는 것은 포도와 토양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전통적인 양조 방식입니다. 포도를 손으로 수확하고 자연 효모로 발효한 뒤 충분한 침용 과정을 거치며, 대형 슬라보니안 오크 캐스크에서 오랜 시간 숙성합니다. 강한 오크 향을 입히기보다 포도가 자란 땅과 품종 고유의 개성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방식이죠.

잔을 가까이 가져가면 그 기다림이 여러 겹의 향으로 펼쳐집니다. 밝은 보랏빛이 살짝 감도는 깊은 루비 컬러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고, 검은 자두와 감초, 말린 장미 향이 은은하게 피어나며 쌉쌀한 스파이스와 감미로운 덤불 향이 조화롭게 레이어드됩니다. 입안에서는 조밀하고 탄탄한 타닌과 생동감 있는 산미가 균형을 이룹니다.
특히 이 와인은 양조 과정부터 기다림의 시간이 긴 편입니다. 40일간의 자연 효모 발효와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의 6개월 숙성, 그리고 대형 오크 캐스크에서 30개월에 달하는 장기 숙성을 거쳐 탄생하니까요. 빠르게 완성되는 맛보다 시간을 들여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맛. 앞서 이야기한 ‘천천히 마시는 와인’이라는 인상처럼, 한 잔을 마실 때조차 속도를 줄이고 시간을 두고 보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가을의 한 잔을 완성하는 방법


트러플 파스타가 바롤로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면을 보여줬다면, 채끝 스테이크는 와인이 지닌 단단한 구조감을 더욱 선명하게 끌어내는 파트너입니다. 육즙이 풍부한 스테이크를 한입 맛본 뒤 와인을 마시면, 바롤로의 타닌과 산미가 입안에 남은 풍미를 깔끔하게 정돈해 줍니다. 익숙하게 알려진 스테이크와 레드 와인의 조합이지만, 막상 함께 맛보면 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는지 알게 되는 페어링이죠.
결국 와인을 고르는 일은 좋은 와인을 찾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지금의 계절과 날씨에는 어떤 맛이 어울리는지, 무엇과 함께할 때 그 매력이 더 잘 드러나는지까지 살펴볼 때 한 병의 와인이 가진 가능성도 달라지니까요.
와인을 다루는 마음, 그 안에 담긴 시간까지 함께 건네는 일


비노파라다이스 한남의 와인 리스트는 생산자의 이야기가 담긴 좋은 와인을 고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유명하거나 좋은 와인을 모으는 데 그치기보다, 각 와인이 가진 배경과 개성을 살펴보고 지금의 계절과 공간에서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죠. 선선해진 바람과 그날의 날씨, 제철 음식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어떤 취향으로 와인을 즐기는지까지 세심하게 살피면서 음식과 와인 사이의 조화를 찾아갑니다.
이번 가을, 비노파라다이스 한남의 테라스에 지아코모 페노키오 바롤로를 올린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트러플 파스타와 함께할 때는 와인의 부드러운 면을, 채끝 스테이크와 함께할 때는 탄탄한 구조감을 살펴볼 수 있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테라스는 한 잔을 조금 더 여유롭게 즐길 수 있으니까요. 좋은 와인을 고르는 일은 결국 그 와인을 어떤 음식과 공간, 그리고 어떤 시간에 마주하게 할지까지 함께 생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지나가기 전, 비노파라다이스 한남에서 계절에 어울리는 한 잔을 천천히 즐겨보세요. 잔에 담긴 와인의 맛뿐 아니라, 그 와인이 놓인 음식과 공간,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경험해 보는 것도 와인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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