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한 살 나이가 들더니, 어느새 부모님이 저를 낳으셨던 그 나이를 훌쩍 지났습니다. 아직도 제 몸하나 건사하기 벅차 어리광을 부리는 저를 보면, 부모님은 그 젊고 예쁜 나이에 저를 낳고 길러주셨던 거지요.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돈 많이 벌어서 근사한 효도를 해야겠다 생각하곤 했는데요. 남의 돈 천 냥이 내 돈 한 푼만 못한 법! 이제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름도 거창한 ‘은혜 갚기 프로젝트’의 첫 번째는 엄마와의 해외여행입니다.
엄마와 해외여행을 갈 때는 고려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째, 비행시간이 너무 길지 않을 것. 둘째, 한국 음식을 먹을 만한 곳이 있을 것. 셋째, 거리나 상점이 너무 지저분하지 않을 것. 나름 까다로운 조건에 딱 들어맞는 나라는 바로 일본, 그중에서도 인천에서 비행기 1시간이면 충분한 후쿠오카였는데요. 엄마와 함께한 2박 3일 후쿠오카 여행기, 바로 시작해볼게요.
아쉬울 만큼 짧은 비행을 마치고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 하카타역으로 이동합니다. 후쿠오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카타역은 볼거리도 많지만 맛있는 음식점이 많기로 유명한데요. 뭐부터 먹을까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하카타역에 다다랐습니다.
마침 저녁 식사시간 즈음에 도착한 하카타역은 여기저기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는데요. 저희 모녀가 선택한 첫 식사는 후쿠오카의 명물 ‘모츠나베’입니다. 주린 배를 움켜잡고 미리 찾아온 모츠나베 맛집으로 향했습니다.
모츠나베는 모츠(소장이나 대장 등)를 주재료로 하는 전골요리로 후쿠오카에 왔다면 한 번쯤은 먹어봐야 할 음식인데요. 저희가 주문한 메뉴는 ‘아부리 모츠나베’로 불에 그을린 향기가 나는 모츠와 아삭한 양배추, 부추의 조합이 환상적이었습니다.
진하고 달큰한 국물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여행의 여독이 풀리는 듯했는데요. 남은 국물에 칼국수 면을 넣어 먹으니 이것 역시 별미! 아쉬울 것이 없는 모츠나베였습니다. 늦게 도착했던 터라 저녁 식사로 첫날 일정은 마무리하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눈을 붙였습니다.
둘째 날이 밝았습니다. 이제 남은 1박 2일을 알차게 즐기기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합니다. 엄마와 함께 일본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는데요. 오늘의 첫 번째 코스는? 당연히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지요.
이번 식당 역시 엄마의 취향을 반영해 미리 찾아놓은 곳인데요. 저는 바삭한 돈가스를 주문했습니다. 회사 앞에도 일본식 돈가스 전문점이 있어 자주 먹는 편인데, 이 순간만큼은 과거의 모든 돈가스와의 기억이 사라지고 이 친구와 저만 남는 순간입니다. 풍부한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는 고기와 입천장에 닿으면 파스스하고 부서지는 아삭한, 하지만 기름을 적당히 머금은 튀김 옷의 환상적인 조합이 오늘 하루도 기분 좋은 날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합니다.
엄마는 정갈한 일본 스타일의 생선구이 정식을 주문했습니다. 정돈된 상차림의 모습만큼이나 비린 맛 하나 없이 깔끔한 고등어구이가 아주 담백하고 맛있었는데요. 낯선 여행지의 음식들이 엄마 입맛에 안 맞을까 걱정이 많이 됐었는데,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아침 식사를 드시는 엄마의 모습에 안심이 됐습니다.
배를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구경을 좀 해볼까요? 큰 호수를 중심으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후쿠오카 동네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는 ‘오호리 공원’으로 이동합니다. 얼마 전 tvN 예능 ‘짠내투어’에 소개되어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유명한 곳인데요. 엄마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습니다.
푸른 나무와 공원 가운데를 넓게 채우고 있는 잔잔한 호수, 가족끼리 산책을 나온 사람들과 핫도그를 파는 귀여운 봉고차까지. 모든 풍경이 평화로워서 엄마와 한참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동행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엄마와 함께 오니 이 순간이 더욱 특별해집니다.
연못에는 성인의 팔뚝보다도 큰 잉어와 물 위를 떠다니는 오리들이 보입니다. 오리에게 먹이를 주니 멀리서부터 부지런히 헤엄쳐와 맛있게 먹고 가네요. 생각보다 엄청나게 빠릅니다.
한참 걷다 보니 날이 조금씩 흐려집니다. 다행히 구름만 많고 비가 오지는 않았는데요. 선선해져서 걷기에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그래도 우산을 챙겨오지 않았으니, 불안한 마음에 연못 중간에 있는 정자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급히 찍고 걸음을 재촉해봅니다.
어느새 또 출출해진 엄마와 저는 그 이름도 유명한 ‘이치란 라멘’을 먹으러 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무척이나 신기해했는데요. 사람이 없이 기계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티켓을 받는 것에서 한번 놀라고,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진 곳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에 두 번 놀라셨죠.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컨셉에 아이처럼 재미있어하시는 모습이 저까지 기분 좋아졌습니다.
주문한 라멘이 나왔습니다. 미리 한국에서 블로그를 통해 가장 맛있다는 레시피를 알아갔는데 결과는 대 성공입니다. 이치란 라멘은 기호에 맞게 면발의 익힘 정도, 국물의 농도, 매운 소스 등 모든 것을 선택할 수가 있어 갈 때마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재미가 있는 곳인데요. 이 날도 역시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먹고 왔습니다.
다음 일정은 일본 여행에 빠질 수 없는 온천입니다. 후쿠오카를 찾는 여행객들은 온천을 즐기기 위해 가까운 유후인으로 많이들 이동하는데요. 저희는 일정이 짧은 만큼 하카타역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온천을 찾아 보았습니다.
열심히 검색한 끝에 발견한 ‘나미하노유 온천’. 하카타역에서 버스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자그마한 온천입니다. 도착하니 비바람이 어찌나 많이 불던지, 온천 앞에서 흔들리는 야자수에서 으스스한 분위기가 나기도 해 불안한 마음이 생겼는데요.
하지만 걱정과 다르게 건물의 안쪽은 신세계입니다. 일본 고택의 형태로 지어진 온천은 작은 등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탕에 들어가는 길이 즐겁습니다. (당연하게도) 탕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했는데요. 안쪽의 시설도 꽤나 좋습니다.
한국의 일반적인 목욕탕처럼 된 실내공간에서 간단히 몸을 씻고 나서, 야외 온천을 즐길 수가 있는데요. 큰 탕이 여러 개가 있어 붐비지 않게 온천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벽과 바닥이 타일로 되어 있지 않고 자연석 그대로를 사용한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갔던 날에는 비가 와서인지 온천이 한적했는데요. 한가로운 분위기에 물도 아주 깨끗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더욱이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얼굴은 시원하고 몸은 따뜻한 것이, 평소 목욕탕을 답답해하는 저도 2시간을 거뜬히 머물다 왔죠. 엄마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몸과 마음을 제대로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온천을 마친 후에는, 노곤한 채로 호텔로 돌아와 마지막 날을 상상하며 꿀잠에 빠졌습니다.
맛있는 아침과 함께 즐거운 여행의 셋째 날을 시작해봅니다. 오늘의 아침은 정식인데요. 자그마한 나무 식기가 8칸으로 나눠져 있어 밥도 국도 그리고 반찬도 모두 조금씩 담겨있는 소담한 식사입니다. 특별하게 간이 센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무언가가 담겨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나 맛있던지, 묘하게 매력적이고 자꾸 찾게 되는 일본을 닮은 한상이었습니다.
일본 방문이 처음이신 엄마는 일본 사람들은 어쩜 그렇게 다들 예의 바르고 말을 예쁘게 하냐며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하게 되셨는데요. 정갈하고 맛있는 이 음식들도 엄마에게는 일본에 대한 좋은 기억을 하나 더 추가해준 셈입니다.
2박 3일 여행의 마지막 일정은 ‘나카스강 구경’과 ‘돈키호테 쇼핑’입니다. 하카타역에서 나카스 강변을 따라 걸어서 돈키호테로 갈 수 있는데요. 한적한 나카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강변으로 자그마한 집들이 틈 없이 조르르 붙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조화롭게 어울려 일본 특유의 분위기를 풍기는 집들. 일본 감성도 듬뿍 느껴지고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키호테에서 한 아름 쇼핑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돌아갑니다. 2박 3일의 여행은 너무 짧지만, 엄마와 함께해 좋았던 순간들이 아주 많았기에 그 기억은 오래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일본은 한창 날씨가 좋겠네요. 이번 주말 짧은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다면, 맛있는 음식과 일본 감성을 가득 느낄 수 있는 후쿠오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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