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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ZIP 큐레이터가 직접 가본 <댄 플래빈, 위대한 빛> 전시회

2018.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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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와 규모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롯데월드타워 7층에 롯데뮤지엄이 오픈했습니다. 개관전으로 <댄 플래빈, 위대한 빛> 전시회가 진행 중인데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댄 플래빈의 개인전이어서 반가운 마음을 가지고 전시를 방문했습니다.

 

 

Figure 1 전시장 입구

 

댄 플래빈(Dan Flavin 1933~1996)은 형광등 작품으로 유명한데요. 미술 재료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상품인 형광등으로 작업을 한 댄 플래빈의 참신하고 혁신적인 예술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동을 시작한 1960년대 미국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에는 1,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의 폐해와 나치의 핍박을 피해 많은 예술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하거나 이주하게 되는데요. 미국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더해지며 미술의 중심지가 미국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승전국인 미국은 과학기술의 진보와 함께 정치와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예술적으로 꽃을 피우게 되는데요. 여기에 맞물려, 재현(representation) 중심이었던 미술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작가들은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여러 재료들과 기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나타났던 주요 미술 흐름 중에 하나가 ‘미니멀리즘(Minimalism)’인데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술적 기교와 불필요한 요소를 ‘최소화(minimal)’하고 사물의 본질 만을 남기고자 한 미술사조입니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산업용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작가가 직접 손으로 작품을 만드는 제작과정을 생략하고, 순수한 시각적 경험만을 강조하였는데요. 작가의 흔적을 최소화하려는 이러한 노력을 두고 미술 저술가인 캐롤 스트릭랜드는 ‘순수한 익명의 효과’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도널드 저드, 칼 앙드레, 리차드 세라 등을 들 수 있는데요, 댄 플래빈도 미니멀리즘 작가입니다. 

 

 

 

Figure 2 <The Diagonal of May 25, 1963 (to Constantin Brancusi) 1963년 5월 25일의 사선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 1963_Fluorescent light and metal fixtures_180.3 x 177.8 x 11.4 cm ⓒ롯데뮤지엄

 

 
1950년대 말부터 뉴욕에서 화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댄 플래빈이 처음부터 형광등으로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반에는 드로잉으로 시작하여 여러 가지 물체를 모아놓는 앗상블라주 작업을 하였는데요. 1961년 후반 <아이콘> 시리즈에서 물감과 빛의 조합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백열등과 형광등을 작품의 일부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63년 5월 25일 상점에서 구입한 형광등 하나를 작업실 벽에 45도 각도 대각선으로 걸어놓고 <개인적 도취의 대각선(1963년 5월 25일의 대각선)> (Figure 2) 이라고 선언하면서, 그 이후부터는 오로지 형광등으로만 작업을 했습니다. 제목에서 보이는 1963년 5월 25일은 플래빈이 처음으로 형광등만으로 이루어진 작품을 완성한 날인 동시에, 자신만의 혁신적인 조형언어를 시작한 첫날이기도 한 것이죠. 이 역사적인 작품은 후에 <1963년 5월 25일의 사선 (콘스탄틴 브랑쿠시에게)>로 제목이 바뀌었는데요. 플래빈은 자신의 작품과 루마니아 출신의 현대 추상 조각의 거장인 브랑쿠시의 <끝없는 기둥>이라는 작품을 비교하며, 둘 다 단일한 형태를 가지고 있고 시각적 한계를 초월하는 공통점이 있다며 두 작품의 연관성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Figure 3 <Monument for V. Tatlin_블라디미르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 1974_Fluorescent light and metal fixtures_304.8 x 61.0 x 12.7 cm ⓒ롯데뮤지엄

 

 

댄 플래빈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대가, 특히 러시아 구축주의의 기하학적 이상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요. 앞서 본 작품에서 등장하는 대각선도 그 영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래빈은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 (Figure 3)라는 작품을 통해서 러시아의 구축주의 조각가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기념하였는데요. 구축주의 또한 미술은 ‘창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현대적인 기술 혁신을 반영해 유리, 금속, 플라스틱 같은 산업소재로 ‘구성하고 구축’하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이러한 점은 미니멀리즘이 추구하였던 이상과도 맞닿아 있는데요. <블라디미르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시리즈는 1964년부터 1990년 사이에 여러 가지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4가지 크기의 백색 형광등을 사용하여 수직과 수평의 형태로 다양하게 조합한 작품 수가 총 50여 점에 이르는데요. 이 연작은 플래빈 형광등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Figure 4 <The Nominal Three (to William of Ockham) 유명론의 셋 (윌리엄 오캄에게)> 1963_Fluorescent light and metal fixtures_243.8 x 10.2 x 12.7 cm_243.8 x 20.3 x 12.7 cm_243.8 x 30.5 x 12.7 cm ⓒ롯데뮤지엄

 

다른 조각가들과 차별화된 플래빈의 또 다른 특징은 조각의 개념을 형태보다는 공간으로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플래빈은 작품과 공간의 관련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작품을 설치하기 전에 일차적으로 설치될 공간의 건축적 구조인 벽, 바닥, 천장, 기둥, 출입구 등을 먼저 고려했습니다. 플래빈에게는 공간에 대한 파악 후 어떻게 설치할 것인가에 대한 작업 방식이 매우 중요했던 것이죠.

 

<유명론의 셋 (윌리엄 오캄에게)> (Figure 4)는 작품이 설치되는 공간을 고려한 최초의 작품입니다. 형광등이라는 오브제를 연속적으로 배치하면서 4개의 벽이 있는 입방체로서의 전시실을 강조한 것인데요. 플래빈은 이를 통해 사람들이 작품과 전체 공간과의 관계를 봐주기 바랬습니다. 이 작품이 헌정된 윌리엄 오캄은 14세기 영국의 스콜라 철학자인데요. 플래빈은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법칙은 필요 이상으로 많아져서는 안된다”는 오캄의 ‘면도날 원리’를 종종 인용하곤 했다고 하는데요. 오캄의 원리는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슬로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플래빈 작품의 지적인 기초를 제공해준 것이기도 합니다. 

 

 

좌 Figure 5 <Untitled_무제>1969_Pink fluorescent light 243.8 x 10.2 x 25.4 cm ⓒ롯데뮤지엄우 Figure 6 <Untitled (to Shirley and Jason)_무제(셜리와 제이슨에게)> 1969_Pink and blue fluorescent light 243.8 x 10.2 x 25.4 cm ⓒ롯데뮤지엄

 

 

플래빈의 많은 작품에서는 <유명론의 셋 (윌리엄 오캄에게)> 작품에서 보이는 “1 + (1+1) + (1+1+1) +…”처럼 하나의 단위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구성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연속적인 구성으로 관람자의 시점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일루전을 만들어내곤 합니다. 관람자가 이동함에 따라 작품이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듯해 시각적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죠.

 

<Untitled(무제)> (Figure 5)처럼 구석에 세워진 형광등 빛은 공간을 확장시키는데요. 전면으로 비치는 빛과 후면으로 비치는 빛이 이중으로 생겨나 모서리 공간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공간이 아닌 새로운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이로써 우리는 실제의 공간과 빛으로 인한 가상의 공간 또는 감각적인 공간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죠. 플래빈은 주변 환경을 포함하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탐구를 하게 하였는데요. 비어있고 무한한, 눈으로 볼 수 없던 공간은 빛의 반향으로 창조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보여지게 되고, 이러한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인식은 환경예술로의 탐색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Figure 5 <Untitled (to you, Heiner, with admiration and affection)무제 (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1973_Fluorescent light and metal fixtures_121.9 x 121.9 x 7.6 cm each of 58 ⓒ롯데뮤지엄

<Untitled (to you, Heiner, with admiration and affection)무제 (당신, 하이너에게 사랑과 존경을 담아)> (Figure 7) 작품은 1.2미터 형광등 4개로 이루어진 사각형을 한 모듈로 58개의 사각형이 반복되는 작품인데요. 기다란 전시장의 벽을 따라 계속되는 이 형광등 ‘장벽’은 빛의 효과가 공간을 어떻게 바꿔주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길게 늘어선 녹색 빛은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요. 플래빈은 예상치 못한 빛의 작용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건축구조를 달라 보이게 함으로써 아는 것과 보는 것 사이의 차이를 경험하도록 초대합니다. 특히 이 작품의 제목에 등장하는 하이너는 플래빈의 오랜 후원자이자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의 설립자입니다. 이번 전시를 함께 기획하기도 한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은 뉴욕에 있는 컨템포러리 미술을 대표하는 비영리 재단으로, 1960년대 이후 미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Figure 6 좌 <Untitled (to Barbara and Joost) 무제(바바라와 요스트에게)> 1966_71_Daylight fluorescent light 243.8 x 243.8 x 12.7 cm

 

 

우 <Untitled (to Janet and Allen)무제 (자넷과 앨런에게)> 1966_71_Pink fluorescent light_243.8 x 243.8 x 12.7 cm ⓒ롯데뮤지엄

 

플래빈의 대부분의 작품이 <Untitled(무제)>이지만 부제로 자신이 존경하거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붙인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전시의 막바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사각형 작품들도 유럽의 여러 부부에게 헌정한 작품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9개의 작품 중 5개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댄 플래빈은 다른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산업재료(알루미늄, 벽돌 등)를 활용하여 작품을 제작한 것과 달리, 생산품 자체인 형광등을 재료로 썼는데요. 형광등은 당시의 발전한 과학기술과 대량생산이라는 ‘산업사회’의 상징물이기도 했습니다. 플래빈은 작품을 위해 사용하는 형광등을 ‘이미지-오브제 Image – Object’라고 명명하면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상품과 구분하고자 하였는데요. ‘이미지-오브제’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플래빈은 형광등의 사용으로 기존의 회화와 조각의 경계선을 허물고자 했습니다. 형광등 자체인 오브제는 ‘조각’의 범주에 들고, 빛으로 만들어지는 색채이미지는 ‘회화’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플래빈은 ‘빛’을 주요 매체로 사용한 최초의 작가로서, 후에 제임스 터렐과 같은 라이트 아트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Figure 7 전시장 전경 ⓒ롯데뮤지엄

 

누구나 살 수 있는 형광등은 플래빈에 의해 공간으로 무한히 확장되는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변화하였는데요. 사실 이런 생산품을 작품으로 선보인 것은 플래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현대미술의 혁명가라고 불리는 프랑스 작가 마르쉘 뒤샹은 1917년 남성 소변기에 가명으로 서명만 한 채 <샘>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작품으로 출품하여 엄청난 비난과 반향을 이끌었는데요. 뒤샹과 플래빈의 다른 점을 꼽는다면, 뒤샹의 변기는 본래의 용도를 박탈했지만 플래빈은 형광등의 조명기구로서의 역할을 그대로 활용하였다는 점입니다. 뒤샹의 변기 작품 발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1960년대 플래빈이 형광등 작품을 발표했을 때도 비평가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Figure 8 전시장 전경_ 작품에서 발하는 빛이 주변 벽을 색으로 물들이고 있는 모습

 

 

또한 플래빈은 형광등을 변형하거나 특수 제작하지 않고, 대량생산으로 표준화된 형광등 사이즈와 색을 고집하여 그대로 작품에 활용했는데요. 이는 수공예 작업 방식을 배제하고자 한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공통된 점으로 작가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형광등은 빛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 일 뿐만 아니라 작품 구성을 위한 조형요소로서의 역할을 하는데요. 이러한 조형요소를 배치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작가의 의도가 부각이 되는 것이죠. 

 

 

Figure 9 전시장 전경_ 미니멀리즘 아티스트 명언 리플렛 ⓒ롯데뮤지엄

 

 

 

이번 전시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명언 리플렛이 설치되어 있는 벽입니다. 댄 플래빈뿐 아니라 여러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남긴 말들이 인쇄되어 있는 스케치북이 설치되어있는데요. 마음에 드는 명언이 있으면 한 장씩 떼어 갈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의 의도와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될 수 있으니, 눈여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Info.

 

 

 

 

 

 

 

 

 

 

 

 


댄 플래빈, 위대한 빛

 

일정: 2018년 1월 26일(금) ~ 2018년 4월 8일(일)

 

장소: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 롯데뮤지엄

 

문의: 1544-7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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