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에서 지켜본 럭셔리 메종들의 AI 사용법
파리에서 럭셔리 산업을 가까이 지켜보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업계가 새로운 기술 앞에서 두 얼굴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구찌가 로블록스에 정원을 열고 루이 비통이 게임을 만들만큼 실험에는 과감하지만, 고객을 직접 마주하는 순간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신중해 집니다.
AI를 대하는 방식도 그랬습니다. 최근 프랑스 럭셔리 협회 코미테 콜베르가 베인앤컴퍼니와 함께 낸 보고서를 보면, 명품 고객 대다수가 이미 구매 전에 AI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매장에는 챗봇이 없습니다. 에르메스에도, 샤넬에도요. 메종들이 뒤처져서가 아닙니다. 기술은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 부지런히 쓰되, 고객을 맞는 일은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럭셔리 업계의 이런 선택은 명품 매장 뿐 아니라 호텔에도 큰 시사점을 던집니다. 환대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만드는 상품이니까요.

자동화하지 않기로 한 것들
AI 이야기가 나오면 보통 "무엇을 자동화할까"부터 묻게 됩니다. 그런데 메종들의 순서는 반대였습니다. "무엇을 절대 자동화하지 않을까"를 먼저 정했습니다. 재고 관리나 소싱 같은 뒷단의 일은 기계에 맡기더라도, 고객과 눈을 맞추는 순간만큼은 처음부터 협상 대상에서 빼놓은 거죠.
루이 비통과 리치몬트에서 일하던 시절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럭셔리에서 가장 비싼 재료는 가죽도 다이아몬드도 아닌 '사람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고객은 결국 자신을 위해 쓰인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시간을 삽니다.
호텔은 이 말이 훨씬 더 잘 들어맞는 공간입니다. 아름다운 공간이 주는 감동이 여행의 문을 열어준다면, 그 여행을 다시 오고 싶은 기억으로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그래서 "AI로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은 사실 "어떤 순간을 사람의 몫으로 남길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선을 분명히 그은 곳일수록, 역설적으로 기술을 겁내지 않고 쓸 수 있으니까요.
AI가 먼저 떠올리는 이름
보고서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AI에게 명품을 물을 때, 열에 일곱은 브랜드 이름 없이 묻는다고 합니다. "30대 여성에게 어울리는 시계 추천해 줘" 같은 식으로요. 어떤 브랜드를 답할지는 AI가 정합니다. 그리고 AI가 답을 만들 때 참고하는 자료는 대부분 브랜드 공식 홈페이지가 아니라 바깥의 이야기들입니다. 기사, 커뮤니티, 후기 같은 것들이요.
주목할 것은 그 결과입니다. 광고비를 쏟아붓는 대형 브랜드보다, 자기 이야기가 한결같은 작은 브랜드들이 AI의 답변에 더 자주 등장했습니다. 알고리즘이 물량이 아니라 이야기의 일관성을 선택한 셈이죠.
여행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여행을 준비할 때 AI에게 물어보곤 하는데, "다음 휴가는 어디로 갈까 " 정도의 막연한 질문에도 AI는 꽤 구체적인 이름들을 내놓습니다. 그 목록에 오르는 호텔들의 공통점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규모가 크거나 광고를 많이 하는 곳보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같은 이유로 이야기해 온 곳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교토의 어느 료칸은 정원으로, 발리의 어느 리조트는 절벽 위 풍경으로 기억되듯이요. 투숙객의 후기와 기사, 여행자들의 대화가 한 방향을 가리킬 때, AI의 추천에도 그 이름이 먼저 올라옵니다.

사람 뒤에 선 AI
파리 부티크의 베테랑 셀러들을 보면, 물건을 파는 일 이상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오래 근속한 셀러가 머릿속에 담아둔 고객 한 명 한 명의 취향은 어떤 데이터베이스보다 정교하고, 메종들도 그 감각을 브랜드의 자산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메종들은 고객용 챗봇보다 '셀러를 돕는 AI'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기술에게 사람의 자리를 내주는 대신, 사람을 더 잘하게 만드는 일을 맡긴 것입니다.
기술로 사람의 수를 줄이는 대신, 기술로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선택. AI가 고객의 취향과 지난 방문을 미리 정리해 주면, 셀러는 고객의 눈을 보며 시간을 더 쓸 수 있습니다.
호텔이라면 어떨까요. 손님의 지난 투숙과 취향을 AI가 미리 읽어준다면, 프런트와 컨시어지도 손님을 대하는 환대의 순간에 깊이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술에 들인 비용이 결국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도록이요.
기술은 뒤에서 사람을 돕고, 사람은 손님 앞에 서는 것. 파리의 메종들이 오랜 고민 끝에 지킨 순서는 결국 이것이었습니다.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손님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것은 결국 사람에게서 느낀 다정함일 테니까요.
Written by 김인애 (럭셔리&컬쳐 칼럼니스트)
참고: Comité Colbert × Bain & Company, 'Luxury and Technology' 보고서(2026)
| 서로 다른 취향이 모여 피어나는 여름 — 꽃으로 나눈 감각을 기록한 하루 (0) | 2026.07.25 |
|---|---|
| 파라다이스시티·아트파라디소, 나란히 빛나다 — La Liste Hotels 2026 (0) | 2026.07.21 |
| 당신이 몰랐던 카지노 딜러의 모든 것 — 2026 파라다이스 카지노 딜링 챔피언십 (0) | 2026.07.07 |
| 뻔한 페스티벌은 잊어라 : 편견 없이 음악과 꿈을 펼쳐낸 하루 (0) | 2026.06.05 |
| 라이브 밴드와 칵테일이 만드는 밤, 파라다이스시티 라운지 바 루빅(RUBIK) (0) | 2026.06.05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