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GOURMET

본문 제목

비노파라다이스 시리즈 Vol.1 소란한 봄의 한가운데서 찾은 완벽한 비움

2026. 4. 13.

본문

 

감을 자극하는 화려한 봄날, 모든 것이 채워지는 소란스러운 이 계절에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차갑고 투명한 ‘비움’을 갈망합니다. 복잡한 일상의 피로를 씻어낼 잘 칠링된 화이트 와인 한 잔이 간절해지는 순간이죠.

비노파라다이스(Vino Paradise)는 오랜 시간 전 세계 VIP에게 최상의 경험을 선사해 온 파라다이스의 안목과 노하우가 담긴 프리미엄 와인 큐레이터입니다. 세계 곳곳에 숨겨진 보석 같은 와인을 엄선해, 산지의 생생한 풍미와 감동을 온전히 전합니다. 와인 한 잔이 선사하는 진정한 휴식과 깊이 있는 취향을 여러분과 나누고자, 섬세한 큐레이션으로 완성된 특별한 와인 컬렉션을 ‘비노파라다이스 시리즈’를 통해 차례대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첫 모금에 담긴 서늘한 바다의 숨결

미각을 정화하는 도멘 사뮤엘 빌로 샤블리의 텍스처


 

잘 칠링된 도멘 사뮤엘 빌로의 샤블리를 잔에 따르는 순간, 투명에 가까운 옅은 레몬빛 와인이 봄 햇살을 머금고 반짝입니다. 잔을 가볍게 둥글려 코끝에 대면, 가장 먼저 레몬 제스트, 라임 그리고 풋사과와 같은 산뜻한 과실향이 조심스럽게 피어납니다. 하지만 이내 그 뒤를 잇는 것은 젖은 돌과 굴 껍데기를 떠올리게 하는 서늘하고 날카로운 '미네랄리티(Minerality)'입니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오크통이 만들어내는 묵직한 바닐라나 버터의 뉘앙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대신 포도 본연의 순수하고 쨍한 산미가 입안을 선명하게 정돈해 줍니다.

 

마치 이른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바닷가의 서늘한 바람과 부서지는 파도의 포말을 입안에 머금은 듯한 감각. 복잡했던 머릿속과 입맛을 단번에 씻어내어 주는 이 우아하고 서늘한 텍스처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요?

 

 

 

샤블리(Chablis) 지역이 품은 이야기

1억 5천만 년 전의 바다, 그 고요한 시간을 마시다


그 비밀은 바로 와인이 품고 있는 아득히 먼 시간에 있습니다. 우리가 한 병의 와인을 여는 행위는 특정 공간과 시간의 지층을 열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 와인이 이토록 독보적인 순수함과 미네랄리티를 갖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1억 5천만 년 전의 과거로 되돌려야 합니다.

 

프랑스 부르고뉴 최북단에 위치한 샤블리(Chablis) 지역. 이곳에서 자라는 포도 품종은 100% '샤도네이(Chardonnay)'로 캘리포니아의 묵직하고 버터리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품종과 완벽하게 동일합니다. 하지만 샤블리의 샤도네이가 세상 그 어떤 화이트 와인과도 다른, 베일 듯 날카롭고 서늘한 매력을 뽐내는 비밀은 바로 발밑의 ‘토양’에 있습니다.

 

무려 1억 5천만 년 전인 쥬라기 시대, 현재의 샤블리 지역은 얕고 따뜻한 바다였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바다가 융기하며 육지가 되었고, 수많은 굴 껍데기와 해양 생물의 화석이 켜켜이 퇴적되어 하얀 석회질 토양인 '키메리지안(Kimmeridgian)'을 형성했습니다. 척박한 하얀 흙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대지의 수분과 미네랄을 길어 올린 포도. 우리가 이 와인에서 묘한 짠맛과 젖은 돌의 향기를 느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대지가 들려주는 정직한 목소리입니다.

 

 

01

 

 

양조자 사뮤엘 빌로(Samuel Billaud)의 이야기

오크통의 화려함을 덜어내고 진짜 샤블리의 맨얼굴을 담다


그리고 이 미세한 대지의 목소리를 가리지 않고 투명하게 병에 담아내는 것은 온전히 양조자의 몫입니다. 요즘의 수많은 와인들이 소비자의 입맛을 즉각적으로 사로잡기 위해 오크통의 묵직한 바닐라 향이나 버터리한 질감으로 와인을 포장(Makeup)할 때, 양조자 사무엘 빌로는 철저히 인위적인 개입을 최소화합니다.

 

△ Samuel Billaud (출처:Domaine Samuel Billaud)

 

그는 샤블리의 유서 깊은 명가 '도멘 빌로 시몽(Domaine Billaud-Simon)'에서 20년 넘게 양조를 책임지며 가문의 영광을 이끌었던 수석 와인메이커였습니다. 그곳에서의 값진 경험은 그가 포도의 본질과 테루아를 깊이 통찰하는 단단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그 통찰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도멘을 설립하며, 오직 자신이 믿는 '완벽하게 순수한 샤블리'를 향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죠.

독립 후 그의 양조 방식은 포도 본연의 생동감과 키메리지안(Kimmeridgian) 토양의 캐릭터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에만 집중됩니다. 이를 위해 오크통의 사용을 제한하고, 서늘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온도를 조절하며 와인을 섬세하게 숙성시킵니다. 인위적인 향으로 빈 곳을 채우는 대신, 테루아(Terroir)가 품고 있는 쨍한 미네랄리티를 투명하게 비춰내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무언가를 채워 넣으려는 강박을 버리고 기교를 덜어냈을 때 마침내 도달하는 본질의 아름다움. 이것이 사뮤엘 빌로가 와인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철학적 메시지입니다.

 

소란한 봄의 끝에서 마주하는 조용한 몰입의 시간

꽃이 피고 지는 속도만큼이나 일상이 빠르게 흘러가는 계절입니다. 쏟아지는 자극 속에서 변하지 않는 영원의 가치와 깊이 있는 취향을 향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죠.

가장 완벽한 휴식은 무언가를 끝없이 더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비워내는 순간 찾아옵니다. 화려한 치장을 덜어낸 이 투명한 와인과 함께, 이번 주말에는 파라다이스가 제안하는 오롯한 비움과 몰입의 시간을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런 포스트는 어떠세요?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