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 <KUHO>로 이름을 알린 정구호는 그래픽 디자인, 패션 디자인, 영화 미술, 공연 미술 등 다방면에서 활동 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입니다. 영화 <황진이>, <스캔들> 등의 미술감독으로 제41회, 제45회 대종상 영화제의 의상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국립발레단의 <포이즈>, 국립무용단의 <묵향>, <향연> 등의 공연을 연출하기도 했죠.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화된 언어로 풀어내고 있는 그가 파라다이스시티를 만났습니다. 그가 진두지휘한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가 처음으로 문을 열던 날, 파라다이스시티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연회’가 펼쳐졌는데요. 파티의 호스트인 정구호가 말하는 그날의 풍경, 그리고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었습니다.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에 전시된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파르네스 헤라클레스(Gazing Ball-Farnese Hercules)>와 그 앞에 선 정구호 감독
Q.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는 어떤 공간인가요?
지난 9월 파라다이스시티가 2차 개장을 하면서 파라다이스만의 시선이 담긴 전시장, 파라다이스아트 스페이스를 오픈했어요. 개장전으로 파라다이스의 소장품 중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해외 작가 2인의 작품을 선보이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이 함께 이뤄졌는데 제가 맡은 부분은 기획전입니다.
파라다이스 측의 아트 소장품인 제프 쿤스의 <게이징 볼-파르네스 헤라클레스(Gazing Ball-Farnese Hercules)>와 데미안 허스트의 <아우러스 사이아나이드(Aurous Cyanide)>가 이번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를 통해 보이게 되었는데요. 세계적인 대가들과 함께 새롭게 주목받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이배와 김호득은 한국 미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작가들입니다. 데미안 허스트와 제프 쿤스가 소재와 방법에 제한이 없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라면, 이 두 작가는 한 우물을 깊게 팠죠. 그 두 가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면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무한정 확장되어 있는 작업과 좁고 깊이 파는 작업의 차이를 <절제와 무절제>란 전시명에 담았죠.
│김호득 <문득, 공간을 그리다(All of Sudden, Drawing the Space)>
│이배 <불에서 부터, Issu du feu>
Q. 이배와 김호득 두 작가의 전시는 얼핏 보면 하나의 전시처럼 보일 정도로 닮았어요. 어떻게 두 작가의 작품을 함께 전시할 생각을 했나요?
김호득 작가의 작품은 먹과 한지를 이용해 굉장히 파워풀한 영감을 보여줍니다. 이와 또 다른 느낌으로 한국의 ‘절제미’를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누가 있을까 고민했는데요. 우연히 숯을 소재로 하는 이배 작가의 작품을 봤죠. 둘 다 흑백을 주 컬러로 이용하고, 매우 미니멀한 작업을 합니다. 또 김호득 작가의 소재인 먹 역시 숯에서 나온 것이기에, 둘이 합쳐졌을 때 서로 부딪히거나 혹은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작가는 한 작가로 보일 만큼 완벽한 하모니를 만들어냈습니다.
Q. 한국 전통문화는 정신적인 면이 많다 보니 외국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요. 그런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나요?
사실 <절제와 무절제>라는 전시명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해외 여러 나라의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우리의 의도에 딱 맞는 단어를 찾기가 어려웠죠. 그러다 이태리에 있는 한 미술 관계자가 ‘overstated’와 ‘understated’가 어떻겠냐고 했고, 과한 표현과 정리된 표현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잘 맞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이처럼 뭐라고 딱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죠.
Q. 언제부터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젊었을 때에는 그리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진 않았어요. 유학 시절 미국에서 지내면서 오히려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죠. 패션을 공부하며 미국 브랜드도 보고, 일본 디자이너 옷도 많이 입어 봤어요. 그러면서 과연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역으로 고민하게 됐죠. 이후 영화 <스캔들>의 프로덕션 디자이너를 맡게 됐고, 준비 과정에서 2년가량 전통문화에 대해 공부할 시간이 생겼는데요. 의상 감독이 아니라 미술 감독이었기 때문에 옷부터 시작해 인테리어, 소품 등 준비할게 너무도 많았죠. 전국 방방곡곡의 인간문화재 분들도 찾아다니고, 박물관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한국 전통문화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Q. 가장 아끼는 한국의 문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우리나라는 굉장히 화려한 듯 소박하고, 소박한 듯 화려합니다. 우리나라 공예품 중 머리를 빗는 참빗의 살 사이에 낀 때를 제거하는 청소 도구 ‘빗치게’라는 게 있는데요. 금이나 은으로 만든 장식을 달죠. 어찌 보면 매우 하찮은 물건인데 그 속에 엄청난 사치스러움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양면적인 것들에 매력을 느끼며, 제가 하는 작품에는 그 부분을 더 보여주려고 합니다.
Q. 이번에 파라다이스시티와 작업을 하며 어떤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 기획전을 비롯해 개관전 파티도 작업했습니다. 파티에는 조금 더 한국적인 요소를 얹고 싶었는데요. 외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글로벌 호텔이지만 한국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고려해, 수많은 호텔들 사이에서 한국의 차별화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The gala show, The Banquet, 2018
Q. 한국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가요?
사람들은 한국다움을 느림의 미학이라고도 하고, 지움의 미학이라고도 합니다. 해외의 파티나 행사에 시끌벅적한 문화가 있다면 우리는 조용히 진행되는 파티가 있죠. 마치 조선시대의 궁중 연회처럼요.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의 콘셉트는 <절제와 무절제>지만, 전체 행사의 콘셉트는 <만월연회>입니다. 개관 파티 이후가 추석이었는데요. 시기에 맞춰 대보름달 아래에서 펼쳐지는 파티로 꾸며봤죠. 추석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연회장의 내외부에 꽃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볏짚과 같은 우리나라의 자연적인 소재들을 모아 꾸몄습니다.
Q. 파티 중 진행된 <향연> 공연도 인상 깊었어요.
국립 무용단의 <향연>은 2015년도에 연출한 작품입니다. 이전에 <묵향>을 연출하며 선비문화의 미니멀함을 보여 줬다면 <향연>은 화려한 궁중의 연회를 표현하죠. 고급스러운 왕실 문화를 현대화했는데 이번 파티와 잘 맞을 것 같아 일부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Q. 마지막 질문이에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국립 무용단과 <향연 2부(가제)>를 준비 중인데, 내년 6월 정도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번 공연은 오방색동을 이용해 이제껏 해온 무용 작업 중에서도 가장 맥시멀리즘을 보여주려고 해요. 이외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내년 4월 밀라노에서 열릴 가구 박람회인 살롱 드 모빌(Salon del Mobile)에 참여할 전시를 기획 중이고, 또 내년 겨울에는 조은숙 화랑에서 개인 전시 <백골동>을 열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한국적인 것을 가장 세계화된 언어로 풀어내는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인터뷰를 전해드렸는데요. 한류 문화 매거진 한웨 10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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