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서 키치(kitsch)를 찾아보면 ‘천박한, 저속한 작품’이라는 뜻과 함께 덧붙이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는 저속한 작품을 의미했으나, 최근에는 긍정적으로도 평가됨.’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수직적 계급 구조가 무너져 중산층인 부르주아 계급이 새로운 기득권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귀족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부를 과시하며 귀족들의 취미까지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는데요. 귀족들이 누리던 기존 고급문화와 구별되고 상대적으로 저급한 문화를 가리키는 말이 키치 입니다. 엘리트 스타일을 값싸게 대량으로 모방해 낸 작품 아닌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하지만 키치가 그렇게 저항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순응적이며 대단히 유머러스 하기까지 한데요. 보편적인 대중문화 욕구를 만족시켜 모든 것에서 쾌락적 감각을 찾고자 하는 목적으로, 고급 예술부터 테이블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미화해버립니다. 이러한 일종의 낙관론적 태도에 의해 보편성을 가진 유쾌한 예술로 탈바꿈하여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제프 쿤스 @구글이미지
가구상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아버지와 재봉사였던 어머니의 미적 재능을 물려받은 제프 쿤스는 어린 시절 대가들의 작품을 모방해 그리고 팔기도 하였습니다. 메릴랜드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으로 간 그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멤버십 데스크에서 뛰어난 영업사원으로 인정 받기도 했는데요. 쿤스는 뻔뻔스러운 자기 홍보와 대량 생산되는 상품들을 여러 종류의 미디어를 통해 예술의 지위로 격상시키며, 미디어 포화 시기에 등장한 예술가 세대의 아티스트로 본격적인 명성과 인지도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The New〉 중 ‘New Hoover Convertible’ 〈Equilibrium〉 중 ‘Three Ball 50/50 Tank’
@Jeff Koons
그는 일상의 사물을 미술관이라는 예술 공간에 위치시킴으로써 새로운 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에 주목하여, 유명 브랜드의 진공청소기를 아크릴 상자에 넣어 진열한 ‘새로운(The New)’ 시리즈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 후, 정지된 시간과 움직임의 환상을 만들어 내고자 수족관에 농구공을 띄운 ‘평형(Equilibrium)’ 시리즈 등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베르샤유 궁전 내 <풍선강아지> @구글이미지
또한 쿤스는 친근함을 무기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는데요. 이로 인해 풍선으로 만든 꽃과 강아지, 초콜릿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이 곧 작품이자 주제가 됩니다. 그리고 사물을 크게 확대하고 보다 화려한 색과 형태로 표현하여 크기와 무게에 대한 관념을 단숨에 무너뜨리기까지 합니다. ‘예술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과 ‘고급문화를 향한 반항심’으로 사물을 가볍고 재미있게 표현함으로써 그는 미국의 스타 작가가 되었고, 그것을 증명하듯 크리스티 경매에서 ‘오렌지색 풍선 강아지’가 경매 사상 최고가인 약 624억원으로 낙찰되면서 ‘살아있는 가장 비싼 미술가’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습니다.
데미안 허스트 @구글이미지
학창시절 절도죄로 체포까지 당한 문제아였던 데미안 허스트는 영국 미술계를 대표하는 가장 성공한 미술가가 되었습니다.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학생전시회인 ‘프리즈(Freeze)’전을 계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는데요. 영국 현대미술의 부활을 이끌어 낸 주역인 ‘yBa(young British artists)’ 군단으로 일컬어지며 미술계를 장악했습니다.
그의 주요 작품 주제는 ‘죽음’인데요. 그 죽음을 보여주는 방식이 너무 직접적이고 충격적이어서 ‘악마의 자식’, ‘엽기 예술가’로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작품 이면에는 어떠한 숭고함과 비장함이 서려있어 죽음에 대한 경고와 성찰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런 그의 작품은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데요. 일부 비평가들은 허스트가 홍보를 위해 일부러 자극적이고 논란을 일으키는 소재를 선택한다고 혹평을 하는 반면, 그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광고계의 거물 찰스 사치는 허스트의 수많은 작품들을 구입하고 그의 갤러리에 전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Damien Hirst
허스트는 1991년 첫 개인전에서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가 가득 찬 유리 상자 안에 매달고 모터를 연결해 움직이게 한 작품을 선보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충격적인 작품에 혹평을 받으면서도, 찰스 사치 외에 화이트 큐브 갤러리의 주인인 제이 조플링의 눈에도 들게 되면서 예술과 상품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일 미술시장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보여주었습니다.
〈For the Love of God〉 @Damien Hirst
허스트의 주요 작품 중 하나인 <신의 사랑을 위하여>는 실물 크기의 두개골에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발표하기 전 한 방송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미술품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하며 사치스러운 작품을 만들게 된 이유를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나는 다만 인간 존재의 무상함을 형상화하여 삶을 찬미하고 싶었을 뿐이다. 죽음의 상징을 사치, 욕망, 타락의 상징으로 포장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겠는가?” –데미안 허스트
독특한 예술세계를 선보이는 제프 쿤스와 데미안 허스트는 작품을 대중화하기 위한 마케팅 방법 역시 남다릅니다. 제프 쿤스는 현대미술가로는 처음으로 베르사유궁전에서 전시회를 가졌는데요. 작품이 전시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관심을 받았지만, 프랑스 보수 집단은 체면을 구기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으로 작용하면서 제프 쿤스의 주가가 치솟았습니다. 데미안 허스트 역시 갤러리를 통하지 않고 단독 경매로 자신의 신작을 선보여 갤러리들의 비난을 받았는데요. 하지만 미술 경매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언론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현대 키치 아트를 이끌고 있는 제프 쿤스와 데미안 허스트. 자극적이기도, 무신경하며 냉소적이기도 한 두 아티스트의 새로운 작품들을 기대해 봅니다.
본 포스팅은 파라다이스 그룹 사내보 콘텐츠를 재각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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