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가 나타났다!
지난 1월, 루이비통 인스타그램에는 핫핑크색 호박 가발을 쓴 할머니가 큰 붓을 들고 컬러풀한 도트를 그리는 영상이 공개되었습니다. 인천 영종도의 파라다이스시티를 방문해본 분들이라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보셨을 거예요. 파라다이스시티 메인호텔 중심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 <Great Gigantic Pumpkin>을 만든 일본인 현대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입니다.
위로와 치유의 향연
매장 쇼윈도에 등장한 일본 예술 거장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된 또 하나의 영상이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요. 90을 훌쩍 넘은 고령의 쿠사마 야요이가 뉴욕 루이비통 매장에 서서 붓으로 도트를 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라이브 페인팅할 상황이 되는 건가?’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곧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됩니다.
네, 영상 속 쿠사마 야요이는 진짜 쿠사마 야요이가 아닙니다. 눈 깜빡이는 모습마저 실감나는 그는 실물과 비슷한 크기로 만들어진 로봇입니다. 건물 전체를 쿠사마 도트로 둘러 버린 규모도 대단합니다. 파리에서는 상젤리제 루이비통 매장 옥상에 몸을 걸친 채 외벽에 도트를 그리고 있는 거대한 쿠사마 인형이 눈길을 사로잡고, 도쿄에서는 하루주쿠 매장 1, 2층을 관통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쿠사마 조형물이 매장 방문객을 맞이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신기하고 다양한 모습의 쿠사마를 만날 수 있습니다.
#루이비통X쿠사마야요이
이쯤 되면 눈치 채셨죠? 이것은 루이비통의 2023년 컬렉션입니다. 루이비통이 쿠사마 야요이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출시하면서 전 세계 캠페인 광고와 매장 디자인을 쿠사마 야요이로 변경했고,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 전 세계 도시에서 인상적인 팝업을 공개한 것입니다.
루이비통과 쿠사마 야요이의 콜라보레이션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루이비통은 제프 쿤스, 앤디 워홀, 알렉스 카츠 등 세계적인 예술가들과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를 전개해왔습니다. 그 형태도 제품 콜라보레이션, 전시 등 영역이 넓고 전문적이어서 기업 자체가 아트 브랜드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즐겁게 노는 사람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는 뭔가 좀 다릅니다.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LVxYayoiKusama #yayoikusama에는 팝업을 즐기는 사람들의 포스팅과 그에 반응하는 댓글들로 넘쳐납니다. 팝업 영상을 AI 툴로 재가공한 릴스 등 개인이 직접 제작한 새로운 콘텐츠들이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사람들은 콘텐츠, 팝업을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자신의 SNS에 공유하기 위해 콘텐츠를 새롭게 가공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습니다.
혁신적인 아트 마케팅
예술을 더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다
#쿠사마 야요이와의 추억
왜 다를까요?
쿠사마 야요이는 1929년생이고, 1952년 첫 개인전을 개최했으니 70년 넘게 활동해온 셈입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만났을까요. 인스타그램에 #yayoikusama 태그 게시물은 100만 건이 넘습니다. #damienhirst #jeffkoons 의 두 배가 넘는 수치죠. 저도 20대 초반, 아트선재센터에서 도트 무늬로 가득한 방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쿠사마 야요이와 그녀의 작품을 볼 때마다 그때의 공간과 시간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삶의 어떤 순간에 쿠사마 야요이를 만났던 사람들은 이번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에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또 이번 프로젝트 콘텐츠들은 키네틱, AR, 딥페이크 등의 신기술로 유머러스하게 참여를 독려해 쿠사마 야요이와 특별한 추억이 없는 MZ세대도 흥미를 가질만한 요소가 가득합니다.
#취향으로 연결되는 사람들
팝업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SNS 속 사람들은 서로가 공유하는 콘텐츠를 즐겁게 지켜봤습니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고 싶어하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출처: <취향의 경제>, 유승호 저) 아마도 그들은, 그리고 저는 SNS 속 국경을 넘나드는 수 많은 사람들과 ‘쿠사마 야요이’라는 같은 취향을 공유하며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행복의 순간
팝업이 끝난 다음 주, 도쿄를 방문했습니다. 늦은 오후 오모테산도 거리를 걷고 있는데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곳이 보입니다. 루이비통 매장이었습니다. 여러 명이 매장 안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지?’ 하고 다가가 보니, 팝업 이후에도 매장 쇼윈도에는 붓을 들고 도트 패턴을 그리는 쿠사마 야요이 로봇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팝업 기간은 이미 끝났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도쿄 사람들은 한참 동안 영상을 찍고 대화를 합니다. 쿠사마 야요이와의 추억을 함께 나누며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루이비통 매장 쇼윈도를 휴대폰으로 촬영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을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처음이었는데요. 이번 루이비통 아트마케팅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브랜드와 기업이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죠. 루이비통을 통해 만나는 쿠사마 야요이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만나는 쿠사마 야요이도 바라보고 경험하는 사람들을 행복의 순간으로 이어주고 있습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