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몽골인들도 겨울에 가지 않는 가장 추운 북부지방 ‘홉스골’을 다녀왔는데요. (겨울 몽골 이야기 http://blog.paradise.co.kr/1290) 영하 48도의 겨울왕국을 경험해 보았으니, 다음번에는 뜨거운 사막에 누워 쏟아지는 별을 감상하리라 다짐 했었죠. 그리고 올여름, 몽골의 광활한 대자연을 느끼고자 다녀왔습니다. 지금부터 자연과 함께한 몽골 캠핑 여행기를 전해드립니다.
카자흐족 게르에서의 하루
│몽골 여행에 감성을 더해 준 '푸르공' 자동차
이번 목적지는 몽골 서쪽 끝 ‘바양울기’ 입니다. 이곳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2,500km나 떨어진 곳이죠. 서쪽 울기 공항에 도착하니 뜨거운 태양,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뭉게구름, 울란바트로에서 36시간을 달려 먼저 도착한 몽골 친구 ‘자화’ ‘바츠라’ ‘두식’이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우리 여정을 책임질 푸르공과 운전 기사님도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몽골 초원과 사막에는 흔한 이정표조차 없는 사실! 지도만 보고 서쪽 지형을 잘 찾아가는 베테랑 운전 기사님 덕분에 이번 여행도 마음 놓고 자연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몽골 서부는 기본적으로 고도가 높은 곳입니다. 높은 고도, 건조한 날씨, 거친 지형을 가진 이 외딴곳은 몽골 사람도 다른 나라를 방문한 것 같다고해요. 인구의 90%가 카자흐족인 이곳은 몽골이지만 카자흐 문화와 언어를 쓰고 있어 마치 두 나라를 여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울기 공항에서 200km 더 가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데 날이 어두워져 우리는 카자흐족 마을의 게르에서 하루를 보냈기로 했습니다. 몽골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쏟아지는 별과 은하수, 별똥별을 바라보며 설레는 여행 첫날을 마무리했죠.
날이 밝자 게르 밖에는 우리를 안내했던 카자흐족 가족들이 소와 야크 젖을 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마치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죠.
카자흐족 가족들은 아침으로 바우르삭(전통 튀김빵)과 아흐샤이(밀크티)를 대접해주었는데요. 카자흐 사람이지만 몽골어도 잘 하시는 기사님 덕분에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쪽 마을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카자흐 사람들은 넘치도록 정이 많고 순박 하지만, 사냥용 독수리만큼 용맹하다고 해요. 이 마을에는 약 400여 명의 독수리 사냥꾼이 거주하는데, 매년 10월이 되면 바양울기에서 ‘황금 독수리 축제’가 진행됩니다. 독수리 사냥은 카자흐족의 오랜 전통문화 중에 하나예요. 신기한 경험을 놓칠세라 저는 카자흐족 가족들의 배려로 전통 의상을 입고 사냥 교육 중인 2살 된 독수리와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카자흐족은 흔쾌히 낯선 이방인에게 하루를 머물게 해주고 좋은 추억도 선물해주었어요.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게르로 수놓은 홉드강변을 지나 여행 목적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네 나라의 국경을 마주한 '타왕복드'를 향해
도로 사정이 열악한 몽골에서 푸르공으로 오프로드를 달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에어컨이 없어 차 안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나오고, 기름 냄새에, 비가 새고, 모래에 빠지는 건 흔한 일이었죠. 감성으로 타기에는 많이 불편해 한 번 탄 이후로 절대 안 탄다는 여행자도 있지만, 우리 일행은 기나긴 여정을 더욱 오래 기억에 남기기 위해 푸르공으로 선택했어요.
알타이 타왕복드 국립공원 가는 길에 만난 ‘흰 강’이라는 뜻을 가진 ‘차강골(Tsagaan Gol)’은 저 멀리 만년설 빙하수가 흘러 내려온 강입니다. 암석 가루가 떠 있어 ‘밀크 리버’라고도 불리는 이강물을 청량하게 한 모금 마셔보고 멋진 기념 사진 한 장 남기며 마침내 만년설이 있는 해발 4,000m의 ‘타왕복드’에 도착했습니다.
전 세계인의 트래킹 천국이라 불리는 몽골 서쪽 끝 타왕복드 국립공원은 알타이 산맥에 있는 5개의 봉우리를 의미하는데요. 나랑(해뜨는 산), 울기(평화의 산), 부르게드(독수리 산), 나이람달(유목민 산), 가장 높은 호이텐(추운 산 4,373m) 설산과 아름다운 호수, 14km에 달하는 몽골에서 가장 긴 포타닌 빙하가 모여있는 곳입니다.
저 멀리 제일 높은 산 중 눈이 있는 곳은 러시아, 없는 곳은 중국, 넘어가면 카자흐스탄, 그리고 제가 사진 찍고 있는 이곳은 몽골 땅인데요. 4곳의 국가 경계선이 있는 지역이라 사전에 출입허가를 받고 몽골인 가이드와 동행해야 출입할 수 있습니다.
차량으로 더는 진입이 어려워 낙타에 캠핑 도구를 실은 뒤 말을 타고 이동을 했어요. 유목민들과함께 그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해가 천천히 질 무렵 만년설을 바라보며, 몽골 친구가 틀어준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말을 타고 이동했던 그 시간은 서몽골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만년설 앞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여 텐트를 치고 불을 지폈습니다.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우리가 지금 하는 여행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죠. 이제 여행의 시작인데 하루하루가 감동스러웠고, 대자연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이 바로 서 몽골 여행의 장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몽골의 서쪽 끝에서 천천히 '울란바토르'로
말 울음소리와 함께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곳에서의 아침은 바빴어요. 멋진 일출도 보고, 자연을 벗 삼아 트래킹도 했습니다. 높은 고도인 이곳은 30분마다 날씨가 변하는데 그 변화무쌍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었던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합니다. 태양이 뜨겁다가도 갑자기 비와 우박이 내리고, 또 뜨거운 햇살이 비추는 잦은 날씨를 모두 겪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몽골 서쪽 끝에서 다시 ‘울란바토르’로 향했습니다. 한참을 달렸을까요? 초원, 하늘, 구름, 땅속으로 도망가는 타르박(보양식으로 불리는 몽골쥐)이 전부인 이름 모를 길에서 차를 멈추고 드론을 날렸습니다. 해가 어느덧 기울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늘 밤 캠핑 장소를 찾기 위해서였죠.
우리 일행 이외에 아무도 없는 초원 한가운데서 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운전 기사님의 몽골 노래를 듣고, 몽골 친구가 불러주는 한국 노래도 듣고, 쏟아질 것 같은 별 아래에서 기사님이 어렵게 공수한 카자흐 꼬냑을 한잔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멋진 자연과 친절하고 여유로운 사람들. 끝도 없는 초원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종횡무진 누비는 시간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12시간을 달려서 만난 뜻밖의 풍경
초원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 날, 드디어 오프로드가 아닌 하이웨이를 달렸습니다. 그동안 비포장도로로만 달려 차에서 물조차 마시기 힘들었는데요. 하이웨이를 만난 푸르공은 너무 평온했고 그렇게 12시간을 달려 새벽 4시에 옵스 ‘하르가스 호수(Khyargas Nuur)’에 도착했습니다.
물고기가 많은 곳으로 유명한 ‘하르가스 호수(Khyargas Nuur)’는 길이 75km, 넓이 31km의 소금호수인데요. 장장 12시간을 달려 일행 모두가 힘들었지만, 조금 있으면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오랜 기다림에 선물이라도 주듯이 햇살에 반짝반짝 비치는 호수를 만날 수 있었죠.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하며 우리는 이곳에서 하루를 더 지내기로 했습니다. 이게 바로 자유여행의 묘미가 아닐까요? 뜨거운 태양 때문에 타 들어 갈 것 같았지만, 솔솔 불어오는 호수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 그 기분은 지금 상상해도 미소가 지어질 만큼 좋았습니다.
뷰가 제일 좋은 곳에서 텐트를 쳤습니다. 하늘과 구름, 저 멀리 있는 돌산과 호수.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완벽한 곳이였어요. 물 색깔뿐만 아니라 돌 색깔마저도 너무 신비로웠죠.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도 찍고, 각자 자유시간을 보내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동하는 순간마저 그림인 몽골
다음날 다시 오프로드를 향해 달렸습니다. 몽골은 이동 시간이 굉장히 긴 편인데요. 몽골의 대자연 덕분에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예쁜 풍경을 마주하면 잠시 차를 멈추고 감상하기도 했고, 훗날 추억이 될 사진도 찍으며 순간을 기록했죠.
여행 내내 우리의 발이 되어준 푸르공이 사막에 빠지는 건 흔한 일이고, 많은 추억을 남기는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산 넘고 강 건너 새벽 2시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차 안에서 자고 싶었는데요. 내일 아침에 놀라운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몽골 친구의 말에 헤드랜턴을 켜고 어둡고 조용한 이곳에 텐트를 쳤습니다.
알지 못했던 몽골 호수의 매력에 빠지다
아침이 되자 어젯밤 친구가 말한 놀라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자브항’에 위치한 ‘하르노르 호수(khar nuur)’였는데요. 호수 안에 사막이 있고, 사막 안에 호수가 있어 신비의 호수라고도 불리죠. 풍경에 한 번, 색깔에 한 번 더 놀란 이 호수는 수초 때문에 검은빛을 띠어 여태 본 호수와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몽골에서 사막과 초원은 원 없이 보긴 했지만, 이렇게 멋진 호수가 많을 줄은 몰랐는데요. 사막 호수 하르노르 말고도 ‘테르히 차강 호수(Terkhiin Tsagaan Nuur)’ 역시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화산 폭발 때문에 테르히 강의 흐름이 막혀 만들어졌다고 하는 차강호수는, 호수에 비친 잔잔한 풍경이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 같았습니다. 멋진 풍경에 반해 호수를 둘러보니 마치 반으로 접은 듯한 데칼코마니 같은 곳이었습니다.
언제나 아쉬운 여행의 마지막
마지막 날은 울란바트로에서 400km 떨어진 ‘어기 호수(Ugii Nuur)’에서 보냈습니다. 말을 타고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트레킹 하며 여유를 즐겼습니다. 그동안의 감동적인 하루하루가 생각이 많이 나는 시간이였어요.
몽골에서 비가 오면 복이 따른다는 말이 있는데요. 마지막날 운치있게 비가 내립니다. 이번 여행에 우박까지 맞았으니 복은 한가득 받은 것 같습니다.
몽골 친구 바츠라는 이른 아침부터 허르헉(양고기+양채를 삶아서 먹는 몽골 전통음식)을 근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행 중간마다 친구가 만들어준 몽골 음식은 모두 최고였어요. 겨울여행에 이어 여름여행을 같이 한 사진을 좋아하는 이 친구들 덕분에 이번 여행을 더욱 값지게 보냈습니다.
이렇게 제 두 번째 몽골 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몽골에 다녀온 후, 여행은 어땠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저는 단연 최고였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좋았던 점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고 힘들었던 점 모두 괜찮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기회가 되면 캠핑장비를 들고 꼭 한번 가보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했습니다.
탁 트인 초원과 사막, 카메라로 다 담을 수 없는 멋진 풍경 그리고 새로운 모험들. 예상밖의 만남과 밤마다 쏟아지는 수많은 별을 보던 날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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