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투리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조각보 공예가 최덕주의 조각보에는 정성과 끈기의 시간, 그리고 받는 사람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 예로부터 딸을 시집 보낼 때 패물이나 돈을 싸는 용도로 쓰던 예단보. 부모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좁은 골목이 아기자기한 풍경을 자아내는 서울 이화동 9-166번지, 이 곳은 달빛이 흐르는 곳이라는 뜻의 ‘월류헌(月流軒)’이란 곳입니다. 이 공간을 작업실로 쓰는 조각보 공예가 최덕주는 우리가 도착했을 때 차분한 분홍색 조각 천과 산뜻한 연두색 조각 천을 이어 붙이며 친구 딸 결혼 선물로 줄 예단보를 만들고 있었는데요.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어떤 색이 잘 어울릴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친구의 아들, 딸들이 결혼할 때 뜻 깊은 일을 해주고 싶어서 이렇게 예단보를 만들어 선물해요.” 실제로 예단보는 예로부터 딸을 시집 보낼 때 패물이나 돈을 싸는 용도로 쓰던 천으로, 예의를 갖춰 선물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도 아들이 결혼할 때 며느리에게 예단보를 만들어줬었어요. 이건 저희 손녀 첫돌 때 만든 두루주머니(허리에 차는 동그란 주머니)고요. 이건 귀신과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괴불노리개예요.” 한국의 여인들이 옷이나 이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사용해 완성한 조각보는 이렇듯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생활 용품이었습니다.
| 추상 회화를 떠올리게 하는 최덕주의 조각보. 벽에 걸면 하나의 미술 작품이 된다.
천을 이어 붙인다는 점에서 서양의 퀼트와도 비슷하고 터키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습니다. 조각보로 책을 싸면 책보로 불리고 이불을 싸면 이불보로 불렸듯이 조각보는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응용 가능한데요. 아주 작은 자투리 천이라도 버리지 않고 정성스레 모아 붙이면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쓰임새를 자랑하는 소중한 용품이 되는 것입니다. “저기 걸린 벽걸이용 조각보도 테이블에 깔면 테이블 러너로 쓸 수 있어요. 용도만 바뀌었지 모두 그대로 쓰이는 거에요. 전통을 지금 우리에게 맞게 쓰는 거죠.” 그렇게 일상의 생활 용품이었던 조각보는 현대에 와서 미술관에 걸리는 예술이 되었습니다.
| 조각보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될 규방 도구들.
| 자연의 재료로 직접 천연 염색을 하기 때문에 최덕주의 조각보는 은은하고 아름다운 색감을 자아낸다.
어떤 천도 소중히 여기며 버리지 않는 미학, 받는 사람의 복을 기원하며 만든다는 스토리에 담긴 주술적 힘, 그리고 몬드리안이나 요제프 알베르의 추상 미술을 떠올리게 하는 오묘한 색 배합이 사람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기나긴 인내의 시간 역시 조각보를 특별하게 만듭니다. 최덕주는 채도와 농도가 다른 다양한 색을 내기 위해 직접 자연의 재료를 사용해 천연 염색을 한다고 하는데요. 주황색은 양파로부터 나온 것이며 붉은 색은 오미자로부터, 푸른색과 녹색은 쪽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은은하고 기품 있는 색 조합과 섬세한 바느질은 최덕주의 작품임을 단박에 알아차리게 합니다.
| 조각보 공예가 최덕주에 따르면, 바느질에는 조각보를 만들 때의 시간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한다.
그녀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안동의 무형문화재 장인이 만든 2필짜리 안동포로 3개월간 몰두해 완성한 조각보 ‘안동포 보자기’를 꼽았습니다. “힘들었을 때 이 작업에 몰두해서 그런지 특별히 더 좋아해요.” 그녀는 조각보를 만드는 기나긴 과정을 통해 오히려 위로를 받고 평안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바느질은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다 표가 나요. 바늘땀이 요동치거든요. 작업물을 통해 그 만든 시간이 보이기 때문에 조각보에는 거짓말이 없는 거죠. 조각보는 저를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작업이에요. 작업했던 시간들이 제겐 기적처럼 느껴져요. 그래서 작품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해요.”
| 최덕주가 친구 딸의 결혼 선물로 줄 예단보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작품을 파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냥 선물로 드리는 게 좋지, 돈을 받고 판다는 건 별로 내키지가 않아요. 예단보도 기쁜 마음으로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주는 거거든요. 받는 사람의 복을 빌며 제 정성과 마음이 들어가 있는 조각보를 만드는 게 행복한 거죠.” 아마도 거기엔, 항상 바느질을 손에서 놓지 않으며 집안 식구들의 안녕을 위해 한복이나 주머니를 손수 만들어준 할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 같습니다. “할머니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는 걸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할머니가 시집 오실 때 가지고 온 장롱을 열어보는 게 저한테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일이었고요. 귀주머니(양쪽 귀가 각이 진 형태의 주머니)나 베갯모, 수저집 등 귀퉁이는 낡고 헤졌지만 정감 있는 그런 것들을 보는 게 참 좋았어요.”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든 아름다움, 조각보에는 작은 정성들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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