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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50주년] EP 02. 관광산업부문의 선두에서 종합그룹으로의 도약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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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사보는 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그룹의 역사를 담은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로 국내 첫 카지노를 개장하고 파라다이스 투자개발을 설립해 초창기 기업 성장의 기반을 다졌던 70년대를 돌아봤는데요.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사업 다각화를 통해 그룹 성장의 발판을 만들어낸 1980년대로 돌아가 보려 합니다. 부산 지역 관광 문화의 선두로 화려한 시작을 알린 ‘호텔 해운대’의 인수부터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하여 종합그룹으로 부상하게 된 그 시절 속 이야기.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해운대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파라다이스호텔 부산’

▲1980년 비치호텔 전경

현재 해운대는 국내 최대 관광지이지만 1980년대만 해도 ‘개발 유망한 관광지’에 그쳤습니다.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었죠. 하지만 남다른 안목을 가진 전락원 회장은 잠재력에 대한 믿음과 도전의식을 가지고 ‘호텔 해운대’를 인수하며 부산 관광산업의 역사를 새로이 쓰기 시작했습니다. 
‘호텔 해운대는’ 총 4,138평 규모의 유서 깊은 호텔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경영이 악화한 상태였는데요. 전 회장의 경영 노하우와 경험은 호텔의 경영 정상화는 물론 해운대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이끄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합니다. 인수 후 그는 제일 먼저 경영 상태를 정상화 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1년 11월, 상호명을 ‘파라다이스 비치호텔’로 변경하고 호텔 소유주가 바뀌는 동안 떨어진 사원들의 사기를 올려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도왔는데요. 직원의 사기 진작은 곧 고객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 회장의 믿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눈부신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인수한 지 2년만에 매출액이 약 20억원으로 늘어나는 놀라운 실적을 거둔 것입니다. 

 

▲1987년 파라다이스 비치호텔 개관 행사

이에 그치지 않고 전 회장은 부산 지역의 전무후무한 초대형 호텔을 만든다는 목표로 ‘파라다이스 비치호텔’의 신축 계획을 시작합니다. 그 결과 1984년 9월 관광호텔 등급을 3등급에서 5등급으로 상향 조정 받습니다. 또한, 부산의 외곽이었던 해운대는 파라다이스 비치 호텔의 완공 이후 특급 호텔 밀집 지역이자 신흥 관광지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죠. 

 

 

순간의 판단이 만들어 낸 기적,
‘파라다이스’ 호텔 체인 브랜드의 시작 

▲1988년 파라다이스 비치호텔 전관개관식

‘파라다이스 비치호텔’이 세계적인 호텔 체인 브랜드인 ‘쉐라톤’이 될 뻔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만약 파라다이스 그룹이 ‘쉐라톤’에 매니지먼트를 위탁했다면 오랜 호텔 경영 노하우와 체인망을 활용해 더 쉽게 경영 정상화를 이뤘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회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눈 앞의 수익만 탐하다 후일 호텔 경영에 발목 잡힐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고심 끝에 체결했던 계약을 파기하게 되었는데요. 당시엔 손실만 가득할 것 같았던 이 사건은 오히려 파라다이스 그룹이 순수한 한국의 호텔 브랜드로서 체인망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9년 '허니문 하우스' 제주호텔 기공식

파라다이스호텔을 체인화 하기 위해서는 여러 지역에서의 호텔 운영이 필요했는데요. 때마침 파라다이스 제주개발이 국제수준의 초대형 호텔 신축을 목표로 ‘호텔 파라다이스 허니문하우스 건설 계획’을 확정하게 됩니다. 제주의 특성상 관광환경보존지구 지역이 많았고 허니문 하우스 부지 또한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어 개발이 어려웠는데요. 1986년 9월, 전 회장의 끈기 있는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합니다. 건축물 고도 제한과 부지개발제한 등의 장애물들을 뛰어 넘고 정방지구 관광지 지정 승인을 받게 된 것이죠. 이것으로 제주에 파라다이스호텔 체인망 구성의 첫 단추가 꿰어지게 됩니다.  

 

 

새로운 도전으로 성장궤도에 안착하다,
놀라운 성과를 보인 ‘파라다이스 투자개발(주)’

▲부산 최초의 면세점 '남문' 감전동 사옥

파라다이스 투자개발은 호텔과 카지노 사업에 이어 또 다른 관광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번째 무대는 면세점 사업입니다. 1983년 10월, 파라다이스그룹은 부산의 면세점 법인 ‘(주)남문’을 인수하며 면세점 사업에 뛰어듭니다. 차별화를 위해 영업 품목을 다양하게 하고 세계 유명 브랜드 유치에 집중하며 부산 유일의 면세점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죠. 
일찍이 서울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던 기업들을 따라잡기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위기에 강한 파라다이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높아진 엔화 덕분에 부산을 방문하는 일본인 쇼핑객들이 많아진 것을 기회로 삼은 것인데요. 공항 근처에 위치한 감전동 영업장 부지에 가건물을 지어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면세점 고객을 유치하고 레스토랑 수입까지 올리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이로 인해 면세점 사업은 더욱 성장 궤도를 달리게 되죠.

 

▲부산의 파라다이스 면세점

1980년대 중반, 파라다이스 투자개발은 서울 장충동에 면세점 및 본사 사옥 신축에 나서게 됩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라는 큰 국제 행사를 앞두고 해당 기간 동안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와 숙박과 쇼핑 시설이 호황을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죠. 1986년 9월 30일, 현재 본사의 사옥이 위치한 장충동에 파라다이스면세점이 개관합니다. 개관 당시 이미 아시안게임은 진행 중이었지만 기념 세일과 기념품 증정 등 특별 판촉 활동으로 아시안게임 참관인들을 포함한 많은 외래 관광객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했습니다.
면세점의 매출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 창업 초기 300만 달러였던 매출액이 10여년이 지난 시점, 연간 5,000~6,000 만 달러의 실적을 기록합니다. 1996년에는 ‘1천만불수출 관광진흥탑’을, 이듬해에는 ‘5천만불수출 관광진흥탑’을 수상하는 성과까지 거두었죠. 면세점 사업의 성공과 함께 파라다이스그룹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관광산업의 선도 기업으로 자리매김 합니다. 

 

 

관광분야 전문 기업의 반란,
사업 다각화로 얻은 종합그룹으로의 성장

▲1985년 '극동스프링크라' 부천 공장 준공 기념식

파라다이스그룹은 관광분야의 성공에만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종합 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한 전략을 펼치는데요. 제조업을 비롯해 금융, 건설 등 여러 부문으로의 사업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합니다. 사업 다각화의 첫 번째는 제조업인 ‘극동스프링크라’의 인수였습니다. ‘극동스프링크라’는 국내 최초로 20여 종의 소방 제품에 대한 국가 인증을 획득해 탄탄한 기반을 다졌던 회사였죠. 인수 이후 경영진 개편과 합리적 생산체제 구축 등 다양한 변화와 함께 1982년 파라다이스로 흡수 합병되어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합니다. 

 

▲1980년대 '흥업상용신용금고' 구 사옥의 모습

두 번째는 금융업 입니다. 파라다이스 투자개발은 1989년 3월, 홍업상호신용금고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금융분야에 진출하게 됩니다. 생소한 분야이지만 그간의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업무 인프라를 구축하고 업무 환경을 개선해 1990년 1월 1일 ‘(주)파라다이스 홍업상호신용금고’로 상호를 변경합니다. 상호 변경 이후 매출액은 급성장 하는데요. 그해에는 67억, 이듬해는 90억 원으로 신장하다 92년에는 무려 135억여 원의 매출실적을 기록하게 됩니다. 2002년에는 ‘파라다이스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하며 금융 분야에서도 안정권에 접어들었죠. 

 

 

민간외교관으로서의 활약,
그룹의 성장과 함께 이루어 낸 사회 환원의 꿈

▲1990년 한국을 방문한 케냐 모이 대통령(좌), 전락원 회장(우)

사업의 다각화에 힘쓰는 한편, 파라다이스는 민간외교관으로서 세계에 한국의 위상을 알리는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케냐에 사파리 호텔을 운영하며 현지 고아와 장애아를 위한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던 전 회장이 한국주재 케냐 총영사로 임명된 것인데요. 두 국가 간 민간 차원의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한 그는 1988년 올림픽을 서울에 개최시키기위해 아프리카 지역의 IOC위원들을 물 밑에서 접촉하며 득표활동을 지원했습니다.

 

▲1989년 우경문화재단 현판식

뿐만 아니라 그룹 역사 초기부터 지켜온 사회공헌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전락원 회장은 “많이 가지려는 탐욕보다 나누어 주려는 기쁨을 창조하라”는 삶의 철학으로 그룹 성장세와 함께 활발한 사회환원 사업을 펼칩니다. 육영사업의 일환으로 계원예술전문대학과 중·고등학교를 설립해 예술 인재 육성에 힘쓰는 한편, 1989년 2월 20일 우경문화재단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문화예술 사업 지원을 시작합니다. 우경문화재단은 동서문학부터 이어지는 파라다이스 문화공익사업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예술로 대중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폭넓은 사업들을 펼쳐갑니다.

눈부신 성장을 이룬 1980년대의 파라다이스는 다양한 사업 분야로 진출하며 새로운 영역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이뤄냅니다. 전회장의 추진력과 경영 노하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임직원들의 긍지와 노력이 함께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이어지는 1990년대는 IMF 구제금융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이했던 시기입니다. 과연 파라다이스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 했는지 다음 에피소드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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