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NEWS

본문 제목

[파라다이스 50주년] EP 01. 국내 최초의 카지노 개장과 파라다이스 그룹의 첫걸음

2022. 8. 3.

본문

2022년 7월 27일 파라다이스 그룹이 창립 5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50년동안 파라다이스는 국내 관광사업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산업에 도전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 성장해왔는데요. 인간존중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카지노, 호텔, 여행, 레저 등 여러 분야에서 역량을 키우며 한국 관광업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기까지 끊임없는 역경과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파라다이스의 시작부터 위기 속에서 발전을 고민한 나날들까지 앞으로 5개의 에피소드로 나눠 이야기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국내 최초 카지노 사업의 도전으로 그룹의 첫 시작을 알린 1960~70년대, 사업을 다각화하며 종합그룹으로 도약한 80년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IMF의 위기를 극복한 격동의 90년대 그리고 PARADISE WAY로 기업정신을 다지고 동북아 최대 복합 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와 함께 K-컬처의 중심에 우뚝 선 현재까지. 첫번째 에피소드, 파라다이스가 탄생하게 된 그 시절의 이야기부터 함께 살펴볼까요? 

 

 

전락원 회장의 한 수,
우리나라 카지노의 시작을 두다

 

▲ 1973 년 오림포스 호텔 전경

국내 카지노 사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그 시작은 파라다이스 그룹의 초대 회장인 전락원 회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 회장은 1967년 8월 1일 국내 최초의 개장을 시작으로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1968년, 국내 세 번째 카지노까지 개장했는데요. 최초의 카지노 개장과 연이어 빠른 성장을 이끌었던 전 회장의 한 수를 함께 살펴볼까요?

1967년, 전 회장은 오림포스호텔의 공동대표 이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오림포스호텔은 최초의 민간 업체가 세운 호텔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전 회장에게는 오랜 시간 구상해 온 카지노 계획을 실현시킬 수 있는 현장이기도 했죠. 하지만 당시엔 호텔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았고 인천의 끝에 위치한 호텔까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기는 어려웠는데요. 이런 불리한 상황으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던 중 민간인이 지은 현대적 감각의 호텔이라는 것을 높이 평가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림포스호텔을 방문합니다. 전락원 회장은 호텔 경영진의 노고를 칭찬하는 박 대통령에게 호텔의 경영 여건이 열악하다는 것을 읍소하는 한 수를 두는데요. 그 후 박 전 대통령은 주무장관에게 민간 자본의 관광산업 투자 요건을 개선하고 오림포스호텔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도 힘쓸 것을 지시하죠. 칭찬을 아끼지 않던 대통령에게 경영난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개선 방향을 요청하는 전 회장의 한수는 오늘의 파라다이스 그룹이 되는 첫걸음이 됩니다.

 

▲'故 전락원 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

이를 계기로 사업의 동력을 얻은 전 회장은 카지노 사업의 허가를 청원하기 위해 엄민영 내무부 장관을 찾아갑니다. 카지노가 우리나라의 경제적 발전에 필요한 외화 획득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사업임을 강조하죠. 이렇게 전 회장의 긴 설득 끝에 정부가 허가한 국내 제 1호 카지노가 오림포스 호텔에 설립됩니다. 이어 외국인이 즐길 관광시설이 부족했던 서울에 국내 2호 카지노인 워커힐 호텔 카지노를 개설하며 서울의 관광 명소로서 입지를 다진 후 제주도 서귀포 호텔에 국내 3호 카지노까지 개설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단 2년 만에 이루어 낸 성과였습니다.

 

 

파라다이스 투자개발(주) 출발,
한국 관광사업의 선두에 선 파라다이스

 

전 회장의 선진적 사고와 사업적 안목 그리고 카지노 사업으로 관광 산업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는 1972년 7월 27일 파라다이스 그룹의 전신인 ‘파라다이스 투자개발(주)’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파라다이스 투자개발(주)’은 출범 이후 해운대 관광호텔, 제주호텔, 제주 허니문 하우스를 인수하며 관광분야의 신사업 기획과 개발을 전담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와 부산에 사업체를 거느린 통합 조정 기능을 갖춘 모기업으로의 위상을 확고히 높였습니다.

 

▲ 초창기 워커힐 카지노 모습(좌), 워커힐 카지노 영업허가증(우)

한편, 동양 최고의 워커힐 카지노는 1975년 카지노 운영 인원이 4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가 1978년에는 면적이 600여 평으로 규모가 확장될 만큼 큰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많은 외국인이 유입되었던 70년대에는 제주도 서귀포 호텔의 카지노를 국제적인 수준에도 견줄 수 있는 규모의 칼 호텔 카지노로 이동하여 새롭게 개업합니다.

 

70년대 파라다이스 그룹은 국내 1호 카지노를 성공적으로 개장하고 확장 시켰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급속도로 늘며 국내 경제에도 선순환을 일으켰죠. 관광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 많은 외화를 확보하는 수단으로도 큰 역할을 하는데요.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한 매출 덕분에 카지노는 국내 관광 산업의 핵심적인 분야로 자리잡게 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사업적인 안목과 의지를 실현한 전 회장의 빛나는 한 수로 파라다이스는 한국 관광사업의 선두에 설 수 있었습니다.

▲1993년부터 2019년까지 관광 외화 수입 및 카지노 외화 수입 수치

 

 

글로벌 기업으로의 도약,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모든 도약의 시기에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계기가 있습니다. 오림포스호텔의 경영 활동을 시작으로 전 회장의 경영 능력은 국내는 물론 해외로까지 알려지게 됩니다. 결국 1971년 말레이시아 겐팅하이랜드호텔로부터 경영 요청을 받게 되고 카지노 경영을 본격적으로 맡으면서 호텔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어냅니다.

 

▲1972년 말레이시아 겐팅하이랜드호텔 진출

국내 카지노에 이어 말레이시아의 겐팅하이랜드호텔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이끈 전 회장은 1973년 케냐 관광공사로부터 대통령 별저 운영을 요청 받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Pradaise Investment & Development(kenya) Limited’가 설립되고 케냐에 Water Front Lodge 카지노를 개장하게 되었죠. 이는 파라다이스 그룹이 글로벌 그룹으로 도약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무대로의 도약은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운영하던 케냐의 사파리파크호텔에서 큰 화재가 일어나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온 것인데요. 모두가 절망하던 때였지만, 전 회장은 위기를 기회의 순간으로 바꿉니다. 사파리파크호텔의 7단계 호텔 종합 개발 계획안을 재수립하며 더 큰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죠.

 

▲케냐 방문 사진

7단계 호텔 종합 개발 계획안의 재수립은 단지 호텔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 회장이 꿈꾸던 파라다이스. 즉 하나의 타운을 설립하는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 계획은 성공적인 재건축으로 마무리되었고 1993년 미국 조경 건축가협회로부터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사파리파크호텔로 케냐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에 성공하며 케냐 국가 경제에 큰 발전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는 동시에 전 회장의 사업적 능력을 글로벌 무대에서도 인정받는 계기가 됩니다.

 

 

사회를 위한 환원,
우리의 문화를 알리고 육영사업을 시작하다

 

전 회장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청년사업가 시절부터 기업을 일구어 얻게 될 이윤을 사회봉사와 공헌에 아낌없이 쓰겠다고 다짐했는데요. 오림포스호텔의 경영진으로 참여하고 있을 때부터 사재를 털어 사회 환원을 실현하고 있었습니다. 1970년 9월 25일에 창간한 <동서문화> 인데요. 이는 판매 수익이 아닌 해외 교민에게 우리나라 문화를 소개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해외를 자주 왕래하는 사람들 편으로 50부 ~ 100부씩 보내며 고국의 소식이 궁금한 해외 교포들에게 문화 소식을 전했죠. 전 회장의 발행 취지를 알게 된 대한항공에서는 세계 각국에 <동서문화>를 무료로 우송하며 교포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것에 주력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1980년 학교 법인 '계원학원'설립

이에 그치지 않고 전 회장은 모친의 유지에 육영사업을 펼쳤습니다. 바로, 계원학원을 설립한 것인데요. 예술 분야의 지원과 교육이 부족했던 시대적 상황에 예술 인재를 육성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80년 3월 20일, 제 1회 입학식을 거행하고 2022년이 된 지금까지도 국내 많은 예술 인재들을 배출하며 명문 학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국내 관광사업의 미래를 위해 첫 걸음을 떼고 더 나은 기업으로 성장 하기까지 파라다이스 그룹은 다양한 도전을 시도했습니다. 전 회장 뿐만 아니라 모든 임직원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데요. 지금까지 파라다이스 그룹의 탄생을 포함한 70년대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과연, 80년대의 파라다이스 그룹은 현재의 모습이 되기 위해 어떤 도전을 했을까요?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해 주세요.

 

이런 포스트는 어떠세요?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