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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과거에 멈춰 있는 옷인가? 이 질문에 한복디자이너 김영진은 단호히 “No”를 외칩니다. 영국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이 한국 대표 패션으로 차이 김영진의 한복 3벌을 컬렉팅하고, 세계적인 모델 나오미 캠벨이 한국의 패션 아이덴티티를 보기 위해 김영진 매장을 찾는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는데요. 가장 컨템포러리한 한국의 패션으로 손꼽히는 김영진의 한복. 이를 실현하고 있는 김영진 디자이너를 만나 한복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습니다.


’차이 김영진’과 ‘차이킴’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진 한복디자이너


Q. 어떻게 한복디자이너가 되었나요?

처음부터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어렸을 적 연극패에 들어가서 연기를 했는데요. 그때 직접 의상을 만들어 입기도 했었습니다. 연기를 그만두고 우연한 기회에 이탈리아 의류 브랜드 ‘체루티’에서 바잉과 판매를 맡게 되며 패션에 관련된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어 ‘루이비통 남성’이 한국에 론칭할 때 합류해서 십여 년간 슈퍼 바이저로 일을 했고요. 그러다 건강 상의 이유로 쉬게 되었는데, 그때 취미 삼아 한복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한복의 매력에 빠져 서울시 무형문화재이신 박선영 선생님 밑에서 바느질과 한복을 본격적으로 배웠죠.


Q. ‘차이 김영진’과 ‘차이킴’으로 나눠 브랜드를 운영 중인데요. 두 브랜드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차이(Tchai)는 말 그대로 difference.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생하는 삶에 대한 바람을 담았어요. ‘차이 김영진’은 고객에 맞춰 단속곳부터 치마, 저고리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만드는 전통 맞춤 한복 브랜드이고요. 세컨 브랜드라 할 수 있는 ‘차이킴’은 기성복으로 좀 더 현대적인 코드를 담아 만듭니다. 때문에 차이킴은 평면재단이라는 한복의 기본 틀은 따르지만 아이템을 꼭 한복에 한정 시키지 않고요. 가격대도 차이킴이 더 저렴합니다.


Q. 두 가지 브랜드를 모두 유지하는 이유가 있나요?

디자이너로서 부족함이나 넘침을 보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한복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 차이 김영진이고, 거기서 받은 영감을 좀 더 쉽게 풀어낸 것이 차이킴이죠. 레디투웨어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차이 김영진을 만들면서 푸는데요. 욕심일 수도 있지만 이런 보완관계가 없다면 디자이너로서 지속적으로 나아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차이 김영진의 2018년 화보로 흑인 혼혈 모델 배유진이 참여해 

기존 한복의 고정관념을 깨는 색다른 비쥬얼을 완성했다.


Q. 루이비통에서 슈퍼 바이저로 일한 경험에 비춰볼 때 서양복도 잘 알 것 같아요. 서양복과 비교해 한복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단편적으로 서양 복식은 입체 재단이고, 한복은 평면 재단이죠. 이 차이 하나로 각자 전혀 다른 뉘앙스를 가진 옷이 되는데요. 개인적으로 평면 재단이 좀 더 실험적이고 미래지향적이라 생각합니다. 평면재단인 한복은 입는 사람에 따라 가변하고, 또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아방 가르드한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죠. 최근 셀린이나 르메르 같은 해외 브랜드들 역시 평면 재단을 바탕으로 한 컬렉션을 자주 선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여기서 좀 더 욕심을 내 최근 차이 김영진에서는 재단을 하지 않고 드레스를 만드는 것을 시험 중입니다.


Q. 김영진 한복의 특징 중 하나는 색다른 소재예요. 소재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나요?

소재에 대해서 과감한 시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기존의 한복 소재만으로 한정 지으면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어, 세계 각국에서 소재를 공수합니다. 프랑스 레이스나 영국 리버티 원단 등을 겉감에 쓰고, 안감은 우리나라 전통 소재와 섞어서 쓰기도 하죠. 사실은 제가 알레르기가 심한 편이라 면, 리넨, 실크 같은 소재 밖에 입지 못하는데요. 때문에 몸에 닿는 부위는 천연 소재를 쓰고 있습니다. 



Q. 차이킴의 대표작인 철릭 원피스는 남성 무관의 옷인 철릭을 변형해서 만들었다 들었어요. 차이킴의 현대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처음 한복디자이너가 됐을 땐 전통이란 무엇인지, 그 기준이 무언인가를 알고 싶어서 공부했어요. 하지만 제가 내린 결론은 한복 역시 패션이기에 디자이너의 아이덴티티가 들어가야 된다는 점이었죠.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부터 서양 복식을 입기 시작했는데요. 저는 일제 강점기를 지나지 않고 계속 한복을 입었다면 지금 어떻게 입었을까를 고민합니다. 김영진이란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이 한복을 입는다면 어떤 형태로 입을 것인가? 그 고민을 통해 만든 결과물이 지금 저의 한복들이죠. 저에게 있어 한복을 현대화하고, 그것이 전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 김영진이 한복을 만나 자기화 시키는 것이 중요했죠. 한복이 아니라 스스로를 중심에 두고 생각합니다.


Q. ‘한국의 미(美)’란 한복을 비롯해 건축, 음식, 음악 모든 것에 녹아 있습니다. 한국의 미적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흔히들 해외에서는 동양의 세 나라인 중국, 일본, 한국의 문화를 많이 비교합니다. 중국은 크고, 화려하고 대륙의 기질이 느껴지는 문화를 가졌고, 일본은 아기자기하고 섬세하죠. 그렇다면 한국의 문화는 무엇일까요? 저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달항아리’인데요. 아무렇지 않게 만든 것 같지만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죠. 그것이 우리 민족만의 지니어스한 면인 것 같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인정하는 이우환 작가나 김환기 작가의 작품 역시 같은 뉘앙스를 가졌죠.


차이 김영진의 한복으로 극적인 효과를 살린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에서 강렬한 레드톤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차이 김영진의 한복


Q. 영화 <해어화>와 국립 오페라단의 <동백꽃 아가씨>의 무대의상 작업에 이어, 최근에는 국립창극단의 <심청가>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의상을 진행했다고 들었어요. 그 작업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한복은 어떤 물질을 쓰느냐에 따라 색감이 완전히 달라지는데요. <심청가> 공연을 앞두고 운 좋게 상주 지역의 천연소재인 생초를 발견했고, 어렵사리 직조 기계를 복원해 원단을 제작했습니다. 덕분에 다양한 우리 전통 소재를 이용해 꾸미지 않아도 멋스러운 청자, 백자처럼 단아한 멋을 강조한 무대를 보여줄 수 있었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배우 김태리의 의상을 맡았는데요. 이번에는 컬러에 좀 더 힘을 주었어요. 과거에는 파스텔의 사랑스러운 것을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그런 컬러들이 흔해졌죠. 지금은 좀 더 원색적이고 화려한 것에 흥미를 느낍니다. <동백꽃 아가씨>에서처럼,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파란 장옷과 파란 저고리 등 센 컬러를 많이 사용해봤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을 위해 한복 스타일링의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결국은 자기화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한복을 어려워하지 말고, 청바지나 티셔츠를 입듯이 편하게 접근했으면 합니다. 굳이 한복을 풀착장으로 갖추고, 으레 드는 가방과 신발을 신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 가지고 있는 스타일에 한복을 하나 둘 더하는 편인데요. 기존의 내 스타일에 한복 두루마기를 걸친다든지, 스커트 대신 한복 치마를 입는다 든지요. 그래야 한복도 나답게 되는 것 같습니다.



 

본 포스팅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련된 감각으로 소개하는

한류 문화 매거진 '韩悦(한웨)'에서 발췌했습니다.